[배국남의 직격탄]우리는 왜 프란치스코 교황에 열광할까

입력 2014-08-13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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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사진 = AP/뉴시스)

[배국남의 직격탄]우리는 왜 프란치스코 교황에 열광할까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었다. 교황의 이름이. 아시시 성자 프란치스코를 따랐다. 사치와 교만, 허영심, 교회 권력에 반대하는 청빈을 삶 속에 그리고 불의에 단호함을 생활 속에 실천한 성자가 바로 프란치스코다. 생각지도 못한 당부였다. 아르헨티나 주교와 신도에게 부탁했다. 2013년 3월 19일 교황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비싼 여행 경비 들이지 말고 그 돈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라고. 그동안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지난해 11월6일 바티칸시티 성 베드로 광장, 한 남자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40년간 저를 따뜻하게 안아준 사람은 교황이 처음이었어요. 사람조차 무서웠는데 살 힘을 얻었어요.” 신경섬유종으로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든 이탈리아인 비니초 리바씨(54)다.

14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과 관련된 모습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을 조금만 관심 있게 봤다면 이들 모습은 파격도, 예상 밖의 일도 아닌 일상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취임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것이 없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조국, 아르헨티나의 산 마르틴 교구 문한림 보좌주교의 말은 이를 잘 입증해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사람이다. 미사에 바티칸의 쓰레기 청소부들을 초대했고 이슬람교 여성과 장애인들을 불러 발을 씻겨줬으며, 마약중독자와 동성애자에게 온화한 손을 내밀고, 노숙인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그런 교황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다. 그 열광의 대열에는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다. 비신자, 심지어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마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환호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일본위안부 할머니들, 노숙자 등 고통받거나 소외된 가난한 이 땅의 사람들이 교황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교황이라는 상징성을 뛰어넘는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관심이다.

왜 그럴까. 교황이라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그곳에 머물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 내려와 가난한 자를 어루만지고 소외된 자의 발을 씻기고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 두 팔로 안는 삶을 행동으로, 일상으로 옮기기 때문이다.

차동엽 신부는‘교황의 10가지: 따봉, 프란치스코!’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간을 하느님 대하듯 해 그 사람 안에 숨겨진 존귀함과 아름다움을 보기에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내밀 수 있다고 교황의 인간 사랑의 본질에 대해 분석했다.

교황의 인간적 선행과 사랑만으로 종교와 체제, 인종을 뛰어넘는 열광을 받을 수 있을까. 그 답은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프란치스코 교황을 선정한 데서 찾을 수 있다. “교황은 부와 빈곤, 공정함과 정의, 세계화와 자본주의 병폐 등 이슈와 대화의 중심에 서서 문제 해결에 주도적이었다. 교황의 자리를 교회에서 거리로 이끌었으며 정의와 자비의 균형을 맞추었기에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과 사랑으로 사람들을 잇는 다리가 됐을 뿐만 아니라 국가, 종교, 인종, 체제를 초월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문제를 야기하는 구조적인 문제와 사회악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대처한 것이다.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체제야말로 사회 병폐의 뿌리이고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야말로 새로운 독재”(2013년 11월 권고문‘복음의 기쁨’)“강자가 정의가 돼서는 안 된다”(2013년 5월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방문 중 발언) “정의의 증진은 경제성장을 전제로 하면서도 그 이상을 요구한다. 이는 더 나은 소득분배, 일자리 창출, 단순한 복지 정신을 넘어서 가난한 이들의 온전한 진보를 지향하는 결정 계획 구조 과정을 요구한다”(‘복음의 기쁨’)“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폭력과 불의에 저항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좀 더 정의롭고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한다”(2014년 1월 성베드로 광장 설교)…불평등, 빈곤, 핍박을 야기하는 구조와 사회악에 대한 단호한 대처와 실천 역시 프리치스코 교황이 이전의 교황과 차별화된 지점이며 이 지점 역시 열광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이런 교황으로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이 희망을, 불의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용기를, 좌절과 고통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위로를 얻는 것이다. 전쟁과 독재, 그리고 자본주의의 폐해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일본군 위안부들, 쌍용차 해고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종교와 상관없이 교황에 열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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