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임신한 여성 근로자의 과로 여부를 판단할 때는 일반 근로자와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상덕 판사는 성모(29·여)씨가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낸 공무상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30일 밝혔다.
외교부 7급 공무원으로 채용된 성씨는 2011년 8월부터 콜롬비아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했다.
대사를 포함해 총 6명의 공무원이 일하는 이 대사관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중남미 순방국 중에 콜롬비아가 포함되면서 이듬해 1월부터 전례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대사관에서 대사를 제외하고 스페인어에 능통한 직원은 성씨뿐이었기 때문에 각종 접견행사·대통령 숙소 준비 등 대부분 업무는 성씨에게 몰렸다. 대통령 방문 한 달을 앞두고는 야근과 휴일근무가 반복됐다.
결국 성씨는 대통령 방문 전날인 2012년 6월 22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임신을 한지 13주가 된 때였다.
성씨는 격무에 시달리다 뇌출혈이 발생했다며 공무원연금공단에 요양 승인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소송을 냈다.
이 판사는 성씨의 주당 초과근무시간이 20~30시간인 점을 고려하면 일반적인 기준에서 만성 격무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성씨가 임신한 상태였다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돼야 한다고 보고 현행법에 규정한 여성근로자 처우에 관한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이 판사는 “‘여성발전기본법’에 보면 국가는 임신한 여성을 특별히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근로기준법’에는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의 1주 근로시간이 40시간 초과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며 “성씨의 업무량이 오히려 전보다 증가된 것은 임신한 여성의 보호 의무를 규정한 법률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또 “의학적 소견 등을 종합하면 과로와 스트레스와 뇌출혈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공단의 불승인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