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사망자 430명 넘어, 가자지구는 어떤 곳?…인구 과밀, 물ㆍ전기 등 기반시설 열악

입력 2014-07-2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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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사망자

▲가자지구 북부 가자시티에서 20일 이스라엘 미사일 공격 이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이 지상 공격을 확대하면서 가자시티는 많은 포격을 받았다. (사진=AP/뉴시스)

이스라엘군이 연일 가자지구를 맹폭하면서 이 지역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438명으로 집계됐다. 20일(현지시간) 주요 외신들은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폭격을 가해 이날 하루 동안 가자지구 사망자가 최소한 100명이 넘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지난 8일 이후 13일째 이어진 이스라엘의 맹폭으로 사망한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총 438명으로 늘었다. 부상자들은 이미 3000명을 넘어섰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 계속되면서 가자지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자지구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면적 363㎢의 지역으로 시나이 반도 북서쪽에 자리잡은 곳이다. 인구가 밀집한 지역임에도 아직 어떤 현존 국가의 영토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가자지구는 제1차 세계대전 중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이후 국제연맹의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의 일부가 돼 영국의 통치를 받았다. 하지만 위임통치령의 지위가 종료되는 1948년 이전인 1947년 11월, 국제연합(UN)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아랍과 유대인에게 분할해주는 계획을 승인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가자지구와 그 주변 지역은 아랍 측에 양도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영국의 통치가 종료되는 날인 1948년 3월 15일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간의 전쟁이 발발했고 이 과정에서 이집트 군대가 가자지구로 들어와 가자지구를 자국의 팔레스타인 원정군 사령부로 삼았다. 이후 지리한 전쟁이 계속됐고 1948년 가을 이집트의 영토는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길이 40km, 너비 6∼8km의 좁고 긴 지역으로 줄어들었다. 현재의 가자지구는 바로 이 곳을 일컫는다. 이 지역의 정확한 경계는 1949년 2월 24일 이집트-이스라엘 휴전협정을 통해 확정됐다.

가자지구는 주로 이집트의 통제를 받았다. 하지만 자국 영토로 간주하진 않았기 때문에 가자지구의 피난민들이 이집트 시민이 되거나 이집트 본토로 들어오는 것을 통제했다. 물론 이들이 주민으로 정착할 여지가 있는 다른 아랍국가로 이주하는 것도 막았다. 이스라엘 역시 난민들이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국제연합(UN)의 구호를 통해 근근히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추후 가자지구는 1967년 6월 이른바 6일 전쟁이 발발해 이스라엘이 재점령했고 이스라엘은 1994년까지 이스라엘이 통치했다. 이 기간 가자지구에서는 크고 작은 유혈 충돌이 발생했고 결국 199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오슬로 협정을 통해 가자지구 통치권을 점진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에 이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고착 상태에 빠지면서 양측은 계속해서 충돌을 거듭했고 가자지구의 평화는 요원해졌다. 현재 이 지역은 인구 밀도가 높고 물 전기 등 기본적인 시설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생활조건이 매우 열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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