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침묵의 나선들이여 입을 열어라

입력 2014-07-0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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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경 온라인뉴스부 차장 겸 뉴스팀장

‘중구삭금’이라는 말이 있다. 뭇사람이 하는 말은 쇠를 녹일 정도로 무서운 힘이 있다는 의미로 여론의 위력을 나타낸 중국 속담이다.

여론의 기원은 17세기 영국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커피하우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런던에서는 커피하우스가 사교장의 역할을 했다. 남자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즐기며 루머와 신문을 통해 정보를 수집했고, 신분의 테두리를 넘어 자유롭게 의사를 교환했다. 커피하우스가 근대 시민사회를 지지하는 여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다.

여론은 민주주의에서 각종 이익단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특히 정치가는 끊임없이 여론의 동향을 살피고 그것을 정치에 반영시키도록 해야 여론의 심판을 면할 수 있다. ‘침묵의 나선’ 이론을 창시한 사회심리학자 엘리사베스 노엘레 노이만이 오죽하면 “여론은 사회적인 피부”라는 말을 했을까.

하지만 여론을 과신해선 안 된다. 여론이라는 것이 국민 전체의 의중인지 그 실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목소리가 큰 것이 전체의 의견인 것 같지만 사실은 잠자코 있는 대다수가 반대 의견인 경우도 있다. 또한 여론은 끊임없이 변한다. 인터넷이 보급된 이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라는 새로운 매개체까지 등장하면서 여론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근거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여론에 이처럼 집단적인 힘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에도 리더조차 여기에 휩쓸리는 우(愚)를 범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여론에 편승하는 리더는 여론을 무시하는 리더보다 더 비판받아 마땅하다. 리더로서의 원칙과 소신, 비전과 책임감이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정치에는 리더십은 없고 여론만 있다. 정치적 리더십은 세월호 참사를 목도하면서 성난 여론을 달래느라 속수무책이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대통령은 국가개조 수준의 개각을 약속했지만 두 명의 국무총리 후보가 연이어 낙마하면서 이마저도 유야무야 됐다. 결국 세월호 침몰 사고 초기 부실 대응으로 여론의 도마 에 올라 사의를 표한 전임자를 유임시키는 악수도 불사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잇단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에 대해 “현실적으로 청문회를 통과할 인물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

두 번째 국무총리 후보자였던 문창극씨의 경우 국정수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역사관이 문제가 되면서 신상털기와 여론재판식 비판으로 인해 국회 청문회 문 앞에도 가지 못했다.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대중적인 여론과 뜻을 달리하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선뜻 내지 못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노이만의 ‘침묵의 나선’ 이론을 빌리자면 낯선 사람들끼리 특정 주제를 놓고 이야기할 때 자신의 의견이 대중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입을 다문다.‘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근거 없는 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처럼 획일화, 동질성을 강요받는 사회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나 조직에서 고립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크다. 이는 ‘마녀사냥’, ‘왕따’라는 표현들로 대변된다.

얼마 전 강원도 고성의 동부전선 GOP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고 역시 획일화의 강요와 조직 내 고립이 주요 원인이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 ‘나폴레옹의 대관식’ 속 나폴레옹은 자신이 직접 왕관을 써 보임으로써 왕권신수설에 따르지 않고 국민투표를 거쳐 황제 자리에 올랐다는 자부심을 후세에까지 남겼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전보를 울리고도 나폴레옹은 ‘황제’ 칭호를 얻기 위해 여론의 의중을 물었다. 그만큼 여론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나폴레옹처럼 국민에 의해 선출된 리더는 달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았다. 진정한 국민통합을 이루려면 여론을 두려워하되 동시에 여론을 회유할 줄도 알아야 한다. 또한 형성된 여론이 올바른 것인지 검증할 수 있는 분별력과 거기에 휘둘리지 않는 유연함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대중의 이면에서 침묵하고 있는 ‘나선’들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 여론의 균형을 잡아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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