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영화·드라마에 빠지다] CP사기·中企 환율사건… 권력 앞에 무력한 법과 정의

입력 2014-07-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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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개과천선’ 동양·키코사태 닮은꼴

극사실주의로 ‘뉴스보다 더 뉴스 같은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은 MBC 드라마 ‘개과천선’이 막을 내렸다. 정부와 대기업, 거대 로펌에 맞서 싸우는 변호사 김석주(김명민 분)를 통해 정의보다는 권력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단순히 정의가 승리한다는 ‘권선징악’ 구조의 드라마라면 극사실주의라는 호칭은 얻지 못했을 터. 개과천선은 동양그룹 CP(기업어음)사태, 키코사태 등 우리 사회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드라마 속으로 가져와 법과 정의가 권력 앞에 어떻게 움직이는지 다룬다.

◇동양사태와 ‘데칼코마니’인 유림그룹의 자금사태=‘개과천선’에서 다뤄지는 유림그룹 CP사태는 동양 CP사태와 판박이다. 극중 김석주의 약혼자 유정선(채정안 분)의 회사인 유림그룹은 자금난에 빠지자 우량기업뿐 아니라 부실 계열사에서도 CP를 발행한다. 부실 CP는 유림그룹 소유의 증권사를 통해 개인고객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판매됐다.

극중 유림그룹의 오너는 그룹에 위기가 오자 알짜 계열사만으로 그룹을 재편하고 나머지 부실 계열사들은 공적 자금으로 정리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치밀한 계획하에 오너는 부실 계열사들을 고의 부도를 내 법정관리로 넘기고 자신이 사전에 마련해 둔 비자금과 사재를 빼돌려 대만 증권사를 통해 증권사 등 나머지 계열사들을 재인수하려고 시도했다.

유림그룹의 모티브가 된 것이 동양그룹 CP사태다. 동양 CP사태는 1만9904건의 피해 사례와 7343억원의 손실을 냈다. 이번 사태로 현재현 동양 회장 등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죄로 기소돼 형사재판 중이다.

드라마 속 유림그룹의 증권사가 대만의 한 증권사에 인수됐듯이 실제 동양증권 또한 대만의 유안타증권에 인수됐다. 유안타증권은 지난 11일 구주와 유상증자로 배정받은 신주 대금 2750억원을 완납하며 동양증권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유안타증권은 자회사인 ‘유안타 시큐리티스 아시아 파이낸셜 서비스’를 통해 동양레저와 동양인터내셔널이 보유한 동양증권 지분(17.21%)을 인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물량(36.40%)을 받아 53.61%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가 됐다.

또한 유림사태 피해자들처럼 동양사태 피해자들은 완전한 피해 배상을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그 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동양사태 피해자들은 개과천선 촬영 현장에 간식을 직접 보내며 응원한 것만으로도 드라마 속 유림사태과 동양사태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추론이 가능하다.

◇키코사태부터 태안반도 기름 유출사고까지=‘개과천선’이 다루는 실제 사건은 동양 CP사태만이 아니다. 지난 2008년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 키코(KIKO)사태 또한 극중 한 사건으로 풀어내고 있다.

키코는 약정환율과 환율변동의 상한(knock-in)과 하한(knock-out)을 정해 놓고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한다면 미리 정한 약정 환율에 달러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반면 환율이 상한 이상으로 오르게 되면 약정액의 1∼2배를 같은 고정환율에 매도해야 한다는 옵션이 붙는다.

지난 2008년 6월 중소기업 8곳이 키코로 인한 피해가 막심하자 키코 약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심사를 청구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키코는 불공정계약이 아니기 때문에 약관법상 문제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같은 해 11월 수조원의 피해를 입은 100여개 기업으로 구성된 키코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는 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5년간의 법적 공방 끝에 지난해 9월 대법원은 키코가 환헤지 목적의 정상 상품이므로 은행이 상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경우 피해 책임은 원칙적으로 가입자가 져야 하고 ‘키코는 불공정거래행위가 아니다’라고 확정 판결하며 금융기관의 손을 들어줬다.

‘개과천선’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김석주 변호사는 중소기업 환율사건을 맡아 변론을 준비한다. 대법원에서도 환율사건이 국민의 관심이 쏠린 큰 사건인 만큼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이번 사건을 공정하게 판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만 결국 은행의 손을 들어준다.

이번 사건에서 은행 측 변론을 맡으며 승소한 거대 로펌 ‘차영우 로펌’의 판사 출신 변호사 전지원(진이한 분)의 “왜 차영우 로펌이 3대 권력기관이라고 불리는지 알겠네요”라는 대사는 이번 사건의 결과가 거대 로펌의 로비로 이뤄낸 산물이라는 키코사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소송에서 패한 중소기업 사장들의 “은행이 기업을 상대로 사기 칠 줄 몰랐다. 어디 폭탄 제조법 모르냐”는 푸념 섞인 대사도 키코사태 피해자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이 외에도 ‘개과천선’은 지난 2007년 충남 태안 기름유출 사건과 2010년 현대건설 매각을 놓고 벌어졌던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충돌 등을 모티브로 극중 사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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