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의 정치펀치] 백 투 더 노무현 정권?

입력 2014-06-2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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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6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유임됐다는 발표가 있었다. 얼핏 보면 리스크를 최소화시키겠다는 청와대 의중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가만히 뜯어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정홍원 총리 유임 발표 직전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신설된다는 보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두 사실을 엮어 정홍원 국무총리 유임의 의미를 보면 이렇다. 우선 지금 또 한 번의 인사 실수가 나온다면, 정권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레임덕이라는 블랙홀에 빠지게 될 것임을 청와대가 인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시스템하에서 또 다른 사람을 총리로 지명해 봤자, 또 어떤 하자가 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청와대가 인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청와대가 현재 인사시스템의 문제점을 자인했다는 사실을 정홍원 총리의 유임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는 말이다.

그리고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한 자인이란, 김기춘 비서실장만 바꾼다고 해서 이런 인사 난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즉, 김기춘 실장 책임론을 인사수석실 신설을 통해 피해 보자는 의도도 읽혀진다는 말이다.

어쨌든 분명한 점은, 그 의도가 어떻든 인사 시스템을 바꾸려면 제대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정권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좋다. 예를 들어 인사 시스템의 변화는 단순한 인사수석실 신설이 아니라 검증팀의 숫자를 늘리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검증자료를 관련 부처로부터 받으면, 이를 검토하는 인원을 지금보다는 최소한 10배는 늘려야 하고, 이를 토대로 문제의 유무를 판단하는 인원도 최소한 10배는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이성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청와대의 설명을 보자면 인사수석은 청와대 인사위원회의 간사를 맡게 되는 모양이다. 그렇게 되면 인사수석은 인사위원장인 비서실장 밑으로 들어가는 꼴이 되는데, 과연 대통령 임명이전의 최종단계에서 난상토론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또 추가돼야 할 점은 대통령의 최종 재가 이후 인사 결과를 야당에 설명하는 절차 부분이다. 이는 미국에서 하는 방식인데, 미국은 최종 낙점 단계에서 대통령이 야당과 인사에 대해 협의한다. 이런 방식을 우리에게 도입하면,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생각한다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야당의 양해도 지금보다는 용이하게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덧붙이고 싶은 점은 언론과 여론도 하나의 검증 통로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여론과 언론의 사전 검증을 마치 특정인 죽이기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여론과 언론도 충분히 검증할 자격이 있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이 언론의 마땅한 역할이다. 그리고 인사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새로운 기구의 신설이 아니라 인사 전 과정의 투명성 제고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어떻게 반영될지 두고 볼 일이다. 특히 지금처럼 인사 과정에서 “비선(秘線)” 얘기가 나오는 마당에, 투명성 제고라는 것은 정권의 정통성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도 한 가지 긍정적 측면이 있다면 박근혜 정권이 과거 정권의 장점을 되살려 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사수석실의 신설은 엄격히 말하면 신설이 아니라 부활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노무현 정권 시절 이미 인사수석실을 운영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이 노무현 정권 시절 있었던 제도나 기관을 부활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존재했던 해양수산부 역시 박근혜 정권이 부활시켰다. 이런 국가 기관들은 이명박 정권 들어서 폐지됐다.

이것을 부활시킨 것은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국가적 차원의 제도나 기관은 정권과 무관하게 영속성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권의 업적은 과거 정권을 부정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념적으로 차이 나는 정권이라 하더라도 그 정권의 장점을 살리는 것이 진정으로 합리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다음 번 정권에 하나의 모범적 사례로 기록됐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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