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업이여, 낮잠을 허하라 -이은호 사회경제부장

입력 2014-06-24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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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태생적으로 낮잠엔 젬병이다. 소위 인간이라면 누구나 잠깐씩은 눈을 붙이지 않곤 견뎌내기 힘든 유럽행, 미국행 비행기에서도 그것이 낮이라면 평생 단잠을 이루는 행운을 누려본 적이 없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이륙합니다’라는 방송과 함께 시체처럼 눕더니 ‘도착합니다’란 방송과 함께 예수 부활의 기적처럼 잠에서 깨는 사람을 보면 무척이나 얄밉다.

그리고 더 얄미운 게 하나 있다. 회사에서 잠깐씩 낮잠 자는 인간들이다. 새벽부터 회사 일에 에너지가 쪽쪽 빨려 완전 귀신 형상이더니 잠깐 낮잠에 온전한 인간 모습을 되찾는 반칙왕 말이다. 낮잠 무능력자인 필자 입장에선 곡소리 나오는 건 당연한 일.

이렇듯 필자에겐 아무 소용도 없는 남의 세상 얘기지만 낮잠 잘 자는 축복을 담뿍 받은 대다수 대한민국 직장인들을 위해 필자가 총대 메고 할 제안이 있다. 바로 기업이 낮잠을 허하란 것이다.

요즘 일본 사회는 낮잠에 목숨줄을 사뿐히 걸었다. 오사카의 유명 IT기업 휴고는 오후 1시부터 4시 사이에 직원들에게 낮잠을 권한다. 사원들이 책상이나 사무실 바닥 등에서 낮잠을 자게 하는 것. 낮잠을 잔 사원은 그만큼 퇴근 시간을 늦추면 된다. 이 회사는 제도 시행 후 업무 효율이 고공행진 중이라고 한다.

후쿠오카현의 현립 메이젠고도 학생들에게 점심 먹고 15분 동안 낮잠을 자도록 한다. 인터넷으로 날밤을 새우느라 저녁 수면시간이 태부족인 학생들에게 낮잠을 자게 하면 학습 능률이 높아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낮잠을 자게 한 뒤 학생들의 대입센터시험(우리나라의 수능시험) 평균점수가 향상되고 진학률도 높아졌다고 한다.

일본 사회가 낮잠에 열광하면서 낮잠 산업도 커지고 있다. 도쿄 중심가 간다에 여성전용 ‘낮잠 카페’가 최근 문을 열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낮잠을 잘 수 있는 8개의 침대와 17가지의 베개 등이 갖춰진 이 카페는 사무실에서 낮잠을 자기 어려운 직장 여성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낮잠을 허하는 기업과 학교가 늘어나고 낮잠 카페까지 생겨난 데는 일본 정부의 역할이 지대했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은 지난 3월 발표한 수면 지침을 통해 “짧은 시간의 낮잠을 통해 작업 능률을 개선할 수 있다”며 국민들에게 낮잠을 적극적으로 권유한 바 있다.

사실 낮잠이 업무 효율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의 저명한 두뇌과학자인 빈센트 월쉬 교수는 최근 영국 첼트넘에서 열린 과학 페스티벌에서 의미 심장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는 잠은 밤에만 잔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낮잠의 이점을 간과하고 있다. 하지만 두뇌에 낮에도 쉴 시간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밤에 잠을 몰아 자야 한다는 관념은 산업혁명 이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생겼다”는 게 요지다.

특히 월쉬 교수는 “낮에 직원들을 30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자게 하면 회사 전체의 생산성이 20~30% 향상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출·퇴근 개념을 없애고 직원들이 원하는 시간대에 일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가령 밤에 일하고 싶은 올빼미형 직원들이 있다면 그렇게 해주라는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점심 후 졸음이 밀려와 눈꺼풀이 푹푹 감겨도 꾹꾹 참으며 일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낮잠을 자면 업무에 태만한 사람으로 찍혀 한칼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보수적 기업이 득시글한 한국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세상은 어느새 낮잠 효용성을 인식하고 있고 낮잠을 허하는 기업 생겨나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두 눈 쫑긋 모아 지켜볼 일이다.

내친김에 욕 잔뜩 흡입할 생각하고 한 가지 더 얘기해 보자. 선진국의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점심에 많은 고용주가 직원들에게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지 않는 기업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영국의 경우 2000명의 직장인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5명 중 1명은 점심에도 머리에 핏발 박박 세워가며 일하고 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한국은 훨씬 더 할 듯싶다.

그러나 점심시간은 오롯이 근로자의 것이어야 한다. 점심시간까지 헉헉대며 일한 근로자들이 노동생산성이 높을 리 없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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