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후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사퇴 여론 속에서도 “대통령께서 (해외순방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저도 여기서 차분히 앉아서 제 일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중앙아시아 3개국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귀국하면 의중을 확인한 뒤 거취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나친 욕심이다. 대통령에 부담을 주면서까지 일단 자리를 지켜보겠다는 심산이다. 박 대통령이 17일 국회에 제출하려던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 요구서에 사인을 보류했을 때 이미 마음은 ‘문창극 사퇴’로 기울었다고 봐야 한다. 18일에는 이례적으로 해외 순방 와중에 “귀국 후 임명동의안 재가를 검토하겠다”고까지 했다. 자신이 앉힌 총리 후보자에 대해 스스로 지명 철회를 한다는 것은 대통령 입장에선 최악의 수다. 그러기에 대통령의 일련의 행보에는 문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다음 가는 총리 자리가 코앞에 와 있다면 누구라도 선뜻 내려놓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청원 의원 등 여당 핵심부에서까지 대놓고 사퇴하라고 할 정도면 상황의 엄중함을 되짚어 봐야 한다.
대통령이나 당보다 더 무서운 건 민심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국민의 마음속에서 문 후보자는 이미 아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고인을 적나라하게 비난하는 글은 도를 지나쳤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으로부터 사과받을 필요가 없다는 칼럼은 역사관을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교회 강연에서는 독립협회 주도자에서 친일파로 전향한 윤치호의 말을 인용해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일본의 식민지로 만들고, 남북을 분단시켰다는 궤변을 언급했다. 그는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 지는 DNA를 가진 민족에게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윤치호의 망언도 거론했다.
도덕성에 있어서도 여러 결격 사유가 드러났다.
관훈클럽 신영기금 이사장 시절 신영기금이 결정하는 고려대학교 석좌교수 자리에 자신을 추천해 임용됐다. 또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 월급을 서울대 동창회가 지급하도록 했다.
앞서 해군장교로 복무할 땐 36개월 중 절반가량을 무보직 상태로 서울대 대학원을 다녔다. 상부의 허가를 받았다는 게 문 후보 측의 해명이지만, 그렇다고 ‘특혜’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지금까지 보여 온 오락가락 태도 역시 총리 후보자답지 않았다. 왜 부적격인지 이유를 대려면 끝이 없을 정도다.
서청원 의원은 “환부를 도려내야 빨리 아물 듯 빨리 조치를 취하는 게 국정운영에 더 도움이 된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버티다 보면 총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착각이고 오만이다. 사퇴가 민심이다. 지금으로선 하루라도 속히 국정운영이 정상화되도록 스스로 물러나는 용단을 내리는 게 맞다. 그것이 본인은 물론 나라를 위해서도 현명한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