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영 한국SR전략연구소장ㆍ배재대 겸임교수
산업계는 생각이 다르다. 미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의 반발도 거세다. 대통령 행정명령권이란 형식을 갖췄기에 정책집행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벌써부터 오는 11월 중간선거의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은 상하원 모두를 야당에 내주는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 실제로 탄소배출 규제안이 실행에 옮겨지면 미국 전역의 600여개 화력발전소 중 상당수가 문을 닫아야 한다. 태양광발전, 풍력발전 등 재생 가능 에너지 중심으로 전력산업 재편이 불가피하다. 현재 인디애나, 켄터키 등 상당수 주가 전력수요의 80~90%를 석탄 화력발전으로 충당한다니, 그들로선 일자리 상실과 경기 위축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환경 보전이란 당위론으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다. 선진국끼리도 산업구조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이견도 크다. 정치적으론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이 가장 치열하게 맞서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를 지키자’는 거대담론에 맞서 경제우선, 성장우선을 외치는 산업계의 목소리가 여전히 크다. 지구를 지키는 일은 의로운 사람 한둘이 나설 일이 아니고, 먼저 나선다고 축복해줄 이도 없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는 엄연한 현실이기에 기후변화와 관련해 한발짝 앞으로 나아가기 만만치 않다.
이 문제를 기업 입장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가 어떻게 정해지느냐는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에 무척 중요한 문제다. 기후변화 대응책이 산업계가 전반적으로 반대하고, 그래서 정책도입이 지연되는 게 전 세계적 추세라면 우리 기업들이 특별히 고민할 게 없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많은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강화하고 있다. 태양광 등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각종 보조금을 주며 육성 중이다. 실제로 지난해 전체 에너지 수요의 19%를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재생 가능 에너지로 충당했다는 보고서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산업계를 중심으로 ‘총론찬성, 각론반대’라는 전형적 거부 움직임에 직면해 있다. “다른 나라들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시행을 미루고 있는 제도를 우리가 왜 먼저 도입하느냐”는 연기론부터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이를 도입하면 기업은 수십조원대의 준조세 부담으로 허리가 휠 것”이란 ‘현실론’도 제기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으면 부담금을 물리고, 적으면 보조금을 주는 ‘저탄소차 협력금제’는 자동차업계의 주관심사다. 저탄소차 부문에서 뒤처지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란 주장이 강하고, 제도 도입 후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기대에 형편 없이 미달할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환경 문제의 중요성은 알지만 현실을 감안해 시기나 강도를 조절해 달라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업계가 간과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소비자다. 소비자가 친환경을 원한다면 기업이 거기에 맞설 이유가 없다. 자동차 부문만 하더라도 지금 글로벌 소비자들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차, 친환경차를 원한다. 산업 전반적으로 다를 게 없다. 소비자는 지구환경을 더럽히는 에너지 대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원한다. 그런 에너지로 만들어진 제품에 손을 내민다. 의식 있는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으며, 그런 움직임은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거세게 다가올 것이다.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오래전부터 친환경 기술에 투자해온 데 비해 우리 기업들은 대세를 거스르는 여론전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이러다 장기적 생존마저 위협받을지 모른다. ‘기후변화 억제를 통한 지구환경 보전’이란 원칙에 충실하다면 지금 환경 관련 규제가 오히려 경쟁우위의 발판이 될 게 확실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기업 체질에 녹아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