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고객신뢰 높고 저금리 지속 영향…“꺾기판매 등 관행 여전…규제 필요”
지난 3월 말 현재 국내 퇴직연금시장의 규모는 85조원을 훌쩍 뛰어넘고 있다. 2006년 8000억원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가입자수 역시 매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된 2005년 5000명이던 가입자수는 지난해 463만5000명에 달하고 있다. 평균 수명 증가로 ‘100세 시대’가 다가오면서, 퇴직연금이 노후생활의 질을 결정지을 중요한 재테크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금융사들 역시 퇴직연금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유치 경쟁을 하고 있다.
가장 앞서 나가는 곳은 은행권이다. 지난해 말 현재 은행권이 퇴직연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6%로 절반 이상을 기록 중이다. 다음으로 보험(33%), 증권(10.9%) 순이다. 은행권이 압도하고 있는 원인은 다른 권역에 비해 고객의 신뢰도가 높은데다 저금리 환경 지속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각 기업 퇴직연금 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퇴직연금 위탁 기준’을 묻는 질문에 ‘금융기관의 평판과 거래 관계’라고 답한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퇴직연금 운용실적’을 선택한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퇴직연금 자체가 실직을 대비하다 보니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안정적인 운용을 선호하는 현상이 뚜렷하다”면서 “이 같은 측면에서 은행이 가장 유리하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은행권의 이른바 ‘꺾기’로 인해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기예금 등을 판매할 때 퇴직연금도 끼워서 판매한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견 및 중소기업의 경우 은행이 대출심사 등을 무기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특히 은행 일선 지점의 경영평가에 퇴직연금 실적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금융당국의 강력한 꺾기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은행의 퇴직연금 적립금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시장 판도를 흔드는 대기업의 퇴직연금 가입이 마무리 단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