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기간 평균 6개월…법적으로 보장된 1년도 채 못채워
한 중견기업에서 8년간 영양사로 일했던 A씨는 출산휴가 후 바로 이어서 육아휴직을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선례를 만들면 모두 육아휴직을 쓸 텐데 그럴 수 없다”고 차디찬 반응을 보였다. 회사는 여기서 한 술 더 떠 A씨에게 사직서를 쓰면 육아휴직 6개월을 보장해 주겠다고 했다. 결국 경력단절의 처지에 놓인 A씨는 애가 울건 말건 그냥 회사에 다녀야 했다.
경제활동 참여 여성이 증가함에 따라 정부는 출산휴직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기업을 집중 점검하고 임신기 근로시간단축제를 공표하는 등 제도적 지원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기업 10곳 중 7곳은 여전히 여직원의 출산 공백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달 기업 402개사를 대상으로 ‘재직 여직원의 출산 및 육아로 인한 공백기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72.1%가 ‘부담스럽게 느낀다’고 응답했다.
여직원의 출산 공백이 부담스러운 이유로는 ‘공백에 맞춰 대체인력 찾기가 어려워서’(60%, 복수응답)를 첫 번째로 꼽았다. ‘출산 및 육아를 이유로 퇴사를 많이 해서’(43.8%), ‘대체자 채용 등 업무절차가 번거로워서’(23.4%), ‘추가 채용 등으로 비용이 발생해서’(19.3%), ‘대체인력의 성과가 보장되지 않아서’(15.2%), ‘출산휴가 등 제도를 운영하기 부담돼서’(15.2%) 등의 답변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채용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이 받지 않는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기업 2곳 중 1곳(52.8%)은 결혼적령기 여성 지원자의 공백기를 우려해 결혼 및 자녀 계획을 묻고 있다.
결국 출산 및 육아휴직을 낸 여직원이 있는 기업(149개사)이 밝힌 평균 휴직기간은 6개월로, 보장된 휴직기간인 1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해 조사 때도 휴직기간이 평균 6개월로 드러나 충분히 휴가를 쓰지 못하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어렵사리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쓴 직원은 2명 중 1명(평균 56%)꼴에 불과했다.
사람인의 임민욱 팀장은 “여성 인력의 효과적 활용을 위해서는 근무환경 개선 등의 제도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기업과 사회 전반의 의식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실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성의 모성권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결혼과 출산은 곧 경력단절을 의미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통계청의 지역별 고용조사를 토대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기혼 여성 10명 가운데 4명은 비취업 상태이며, 이 가운데 약 40%는 결혼·육아·가사 등의 이유로 일을 그만둬야 했다.
서울의 기혼 여성 중 일을 하고 있지 않은 74만5000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2만1000명은 경력단절 이유로 ‘결혼, 육아, 임신·출산, 자녀교육’을 꼽았다. 결혼은 12만4000명(43.0%)으로 최대 비중을 차지했고, 육아 11만7000명(36.4%), 임신·출산 7만명(22.0%), 자녀교육 1만명(3.1%) 순이었다.
특히 ‘결혼, 육아, 임신·출산, 자녀교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은 30대가 17만2000명(53.8%)으로 압도적이었다. 가장 활발히 자아 실현과 경력 관리에 힘써야 할 시기에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환경노동위원회)은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취업하고 나서도 임신, 출산 시기가 되면 퇴사 압력으로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력단절’의 함정을 벗어나지 못하면 경제민주화도, 복지국가도 어렵다”며 “출산휴가, 육아휴직,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등 법·제도는 어느 정도 구비된 만큼 이제는 이 같은 제도들이 현실에서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실근로시간 단축과 직장문화 개선, 근로감독 강화 등 노동행정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