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 ‘금융권 감사’] 감시자? 로비스트?… 누구냐 넌!

입력 2014-05-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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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인한 KB국민은행의 경영진 갈등이 금융권 최대 화제로 떠올랐다. 내부 갈등의 직접적 배경에는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결정 과정에서 나온 석연치 않은 의혹에 대한 은행 내부 감사보고서가 중심에 있다. 이 감사보고서에는 2000억원 규모의 주 전산시스템 교체의 판단 근거가 된 자료가 왜곡조작됐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표면적으로 분석하면 그동안 허수아비 논란에 휩쌓였던 금융권 감사시스템과 다소 다른 측면이 있다. 경영진과 이사회 등의 경영 판단에 거수기 역할을 하며 눈치만 보고 있다는 비판에 정면 대응하는 적극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이에 이번 사태의 결론이 은행의 잘못된 관행을 정비할 수 있는 계기로 발전되면 긍정적인 효과를 예고할 수 있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금융권에는 각종 금융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내부통제의 적정성과 이를 사후 평가할 감사위원회의 역할과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러나 이번 국민은행 사례에서 보듯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일부 인사 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은행 경영협의회를 거쳐 이사회 의결이 된 사항에 대해 자의적인 감사권을 남용,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에 금융권 감사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일찍이 은행권의 상임감사 자리는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김용우 우리은행 상근감사는 감사원 제2사무차장과 감사연구원 원장을 지냈다. 조선호 하나은행 상근감사는 금융감독원 은행검사2국 부국장과 증권검사2국 국장을 역임했다.

이석근 신한은행 상임감사는 금감원 부원장보를 역임했다. 또 한백현 농협은행 감사위원은 금감원 특수은행서비스 국장을 지냈으며, 이용찬 상근감사는 금감원 상호금융서비스 국장을 지냈다. 신언성 외환은행 상임감사는 감사원 재정금융감사국과 감사원 심의실, 감사원 감사청구조사 국장을 거쳤다. 윤영일 기업은행 상임감사도 감사원 출신으로 낙하산 출신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전산시스템 교체를 놓고 이사회와 갈등을 빚은 국민은행 정병기 상임감사의 경우도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보험권의 경우 금감원 출신인 이성조 한화손해보험 감사와 장명식 현대라이프생명 감사가 재선임됐다. NH농협생명의 경우 임기만료된 이상덕 감사(전 금융감독원 팀장)의 후임으로 강길만 전 금감원 국장을 신임 감사로 선임했다, 롯데손해보험은 지난달 강영구 전 금감원 부원장보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기재부 출신인 한화생명 정택환 감사도 재선임에 성공했다.

카드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개인정보 유출 파문을 일으킨 KB국민롯데카드NH농협은행(농협카드)의 감사 자리는 금감원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국민카드 서문용채 상근 감사, 롯데카드 조욱현 감사, 이용찬 농협은행 감사, 신한카드 김성화 감사 등이 금감원 출신이며, 양성용 금감원 전 부원장보도 최근 삼성카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여기에 거수기 역할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아온 사외이사들이 자본시장법상 감사위원회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해야 하는 데다가 감사위원회에 상임 감사가 참여, 상호 견제와 감시가 미흡하다는 비판은 지속됐다.

더욱이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하달한 감사업무 지침은 사실상 사문화가 됐다. 일부 은행의 경우 감사부에 1급 정보를 차단하고 있을 정도다. 이미 감사가 경영진의 들러리 노릇에 머물거나 대외 로비 창구로 활용돼 온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은행권 사정에 밝은 인사는 “현재 은행권 감사에는 감사원금감원재무부 출신자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제대로 내부통제를 단속한 사례는 없었다”며 “뒷방에서 고액 연봉에 자족하던 게 그들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기관에서 ‘문책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은 감사는 연임이 불가능해지는 등 감사의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은행보험금융투자회사의 내부통제를 총괄하는 감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금융권 감사 자리가 퇴직 모피아 간부들의 노후대책으로, 현직 간부들은 인사적체 해소 수단으로 활용되는 사례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금융권 감사들을 상대로 중징계를 내리기가 쉽지 않고, 감사들 역시 내부통제라는 원래의 역할보다는 대관업무에 치중한 게 사실이다.

최근 ‘관피아’ 논란에 따른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감사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이번 조치가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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