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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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참기 힘들었다. 우선 사실이 아니었다. 진보적 정책이 없지는 않았지만 ‘좌파’라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반기업 정서’는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그 정도의 왜곡은 참을 만했다. 이리저리 당하며 이력이 나 있던 터였다.
그러나 문제를 그렇게 단순화하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정책담론의 생성을 가로막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중에는 ‘이 정부만 끝나면 잘 되게 되어 있다’는 소리가 파다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죽어가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대중 강연에 나섰다. 글로벌 차원의 투자부진 현상과 고용 없는 성장의 문제 등 무엇을 걱정해야 되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힘줘 한 마디 했다. “참여정부의 반기업 정서 때문에 경제가 어렵다면 이 자리에서 춤을 추겠다. 왜? 이 정부는 곧 끝이 나니까.”
이명박 정부 시절, 다시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었다. 경제를 포함한 크고 작은 모든 문제를 대통령 때문이라 했다. 이때 다시 한번 힘줘 이야기했다. “만일 그렇다면 춤을 추겠다. 왜? 이명박 정부 또한 곧 끝이 나니까.”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다. 잘 나가는가 싶더니 세월호 참사 이후 곤란을 겪고 있다. 지지도가 뚝 떨어지면서 안전문제와 관료집단의 무능 등 모든 문제가 다시 대통령 탓이 되고 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집회들이 열리는가 하면 SNS는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글로 뜨겁다. 일부에서는 선동의 기운과 분노를 부추기는 기운도 느껴진다.
이쯤에서 다시 한 마디 하자. 이 모든 것이 대통령 때문이라면 다시 춤을 추겠다. 왜냐고? 이번 대통령 역시 몇 년 뒤면 그만두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연안여객선의 안전문제만 해도 그렇다. 낡은 배를 사 와 운항하는 데에도 쉽게 어찌할 수 없는 이유와 배경이 있고, 노선 대부분이 독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에도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다. 몰라서 그냥 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알고도 어쩌지 못했던 부분들이다.
이를테면 지금 당장에도 돈이 문제다. 새 배를 사서 운항하게 하자면, 또 경쟁체제가 가동될 수 있게 하자면, 그리고 과적 등의 반칙을 하지 않고 원하는 수준의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하자면 얼마나 많은 국고와 지방비가 지원되어야 할까? 또 이 돈은 어디서 어느 부분을 희생시켜 마련할 수 있을까? 잘 가늠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 혼자서 어찌한다고 하여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처에 유사한 문제들이다. 말썽이 되고 있는 수도권과 서울 도심을 연결하는 광역버스 입석금지 문제는 그 좋은 예다. 단속을 하지 않으면 승객이 위험해지고 단속을 하면 많은 사람이 제 시간에 출근을 하지 못하게 된다. 버스를 늘리면 좋겠지만 버스회사는 그럴 수가 없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 만한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문제다.
대통령에 대해 책임을 묻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힘이 크건 작건 대통령은 대통령이고 국민은 국민이다. 원인이 무엇이건, 또 그 일차적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국가적 불행이나 국민이 피해를 입은 일과 관련해 대통령은 포괄적 책임을 진다. 또 국민은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책임을 묻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다르다. 가장에게 가난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하여 그 집안이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잘사는 방법은 그 나름 달리 찾아야 한다. 같은 이치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그 자체에 보다 더 충실해야 한다. 정책적 담론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들이 희생을 당했다. 이번만큼은 다르게 가자. 선동하거나 분노를 부추기지 말자. 책임만 묻겠다고 나서는 일도 삼가자. 안전문제이건 국가개조 문제이건 문제 그 자체로 돌아가자. 그리하여 제대로 된 대안과 해결책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