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관료화 리스크에 빠진 대한민국

입력 2014-05-12 10:5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김기찬 가톨릭대 대학발전추진단장ㆍ아시아 중소기업학회 회장

대한민국이 표류하고 있다. 관료화 때문이다. 자리에만 관심이 있고, 조직의 존재 이유(mission)에 무관심한 지도자들 때문이다.

관료화된 조직은 책임지는 의사결정을 안하고 명령만 기다린다. 우리 국민들은 자신이 책임지는 결정을 안 하고 명령만 기다리는 지도자들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 닥쳐도 이들 지도자가 모두 보고만 하고 명령만 기다리는 동안 국민들은 죽어가지 않을까.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은 단적으로 한국이 관료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소의 지휘자는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일을 맡길지를 늘 생각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능력 있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평소 준비된 조직이라면 재난 상황 발생시 당사자가 자신의 책임 하에 의사결정하고 사명감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훌륭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가는 담당자의 전문적 능력과 훈련 정도에 달려 있다. 평소 적재적소 인사 배치와 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병원에서 수술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벌점제를 도입했다. 한 달 만에 수술 사망률이 제로(0)로 떨어졌다. 그런데 환자들은 ‘수술실’이 아니라 ‘입원실’에서 죽어나갔다. 의사들이 위험도가 높은 수술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어느 뉴욕병원 이야기이다. 이것이 제도의 역설이다. 전형적인 관료화다. 관료화란 자기 조직의 존재 이유에 대한 사명감이나 철학 없이 위험 회피적 관리만 하는 조직을 말한다. 이런 조직은 절체절명의 응급 상황에서도 내가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규정을 강조하고, 명령만 기다린다. 이들은 문제의 해결보다 나중에 자신이 져야 할 문제의 원천을 없애려고만 한다. 축구선수가 슛 찬스에서 감독에게 ‘슛할까요, 패스할까요’ 하고 묻는 격이다.

세월호 사고는 국민 모두가 공분을 느끼지만 남을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이제 조용히 나의 관료화에 질문을 해봐야 한다. 우리 조직은 존재이유(Mission)에 충실하고 있는가, 우리 조직의 위기 상황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상황에서 존재의 이유에 대한 의문없이 명령과 규정만 내세우고 있지 않는지.

경제민주화 와중에서 흥미로운 통계가 나왔다. 빠르게 움직이는 IT(정보통신)와 전자산업에서 오너가 없는 기업이 최근 성공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전문경영자의 전형적 약점은 관료화이고 오너십 부재이다. 창업자나 오너가 별로 없는 유럽의 전자산업은 거의 다 망했다. 미국의 잘 나가는 IT회사는 거의 다 창업자나 오너들이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이다. 전문경영자에게 맡겨진 휴렛패커드는 많이 흔들리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위험을 동반하는 의사결정을 회피하는 관료화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은 한국을 관료화의 참호에서 끄집어내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안주의 참호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복지만능의 참호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안전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 한국정치는 모두 표되는 공짜 복지정책에만 몰두하고 도처의 위험에 대해서는 눈감고 있다. 구미공단의 불산누출 사고에도 불구하고 노후화된 산업단지 공단에 30년된 녹슨 파이프가 제발 터지지 말기를 기도만 한다. 이 순간 초중고교생들은 갈라진 벽틈으로 된 교실에서 공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위험하니 뛰지 말라고 한다. 서울지하철에 사고가 나니 노후화된 차량을 빚 내서라도 교체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돈 벌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쪽방에 가보라. 인간의 존엄이 파괴되는 주거를 바꾸는 작업이 매월 기초연금 20만원 주는 것보다 시급한 것 같은데 현금 주기에 정치인들은 너무 관대하다. 65세 이상 노인 639만명 중 소득하위 70%인 447만명이 기초연금을 받게 된다. 이 중 20만원을 받는 대상자는 7월 기준으로 406만명 정도라고 한다. 정말 좋은 일이지만 시행 첫 해 소요예산 10조원을 시작으로 2020년 28조원, 2040년 160조원, 2060년 390조원 등으로 불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 지금은 좋아지지만 이 부채는 누가 갚을 것인가.

한국이 ‘현재의 저주(curse of incumbency)’ 가설에 빠져들고 있다. 현재는 좋지만 미래가 위험해진다는 가설이다. 표 싸움만 하다 보니 한국의 미래와 안전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이번 선거부터 미래대책 없는 복지에서 미래가 준비된 복지로, 고용과 안전이 우선된 복지국가로 바꾸어 가야 한다. 세월호 사건이 안주의 참호 속에 있는 우리 모두를 미래의 안전한 세상으로 끄집어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