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실, 진짜 경계 허물기가 필요한 분야는 따로 있다. 바로 공공 부문이다. 관료제는 행정 서비스에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도입된 시스템이긴 하지만, 그동안 칸막이식 행정문화가 조직 이기주의, 실적 챙기기 경쟁 등을 낳으며 비효율을 야기하기도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일부 변화가 감지된다. 부처나 산하기관끼리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행정 비용은 줄이고 민원인의 서비스 만족도는 증가하는 ‘생산적 행정’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이제는 운전면허 발급이나 갱신을 할 때마다 번거롭게 4,000원을 내고 별도의 신체검사를 받을 필요가 없다. 보건복지부가 경찰청과 국민건강검진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국세청과 관세청이 역외탈세 관련 혐의정보를 서로 공유·교환하기로 하면서 과세 형평성 제고와 세수 확보도 보다 용이해졌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부 내 칸막이를 해소하여 협업하고 정책의 수혜자인 국민의 행복을 이끌어내는, 이른바 ‘정부3.0’의 대표적 모범이라 할 만하다.
필자 역시 공공 부문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으면서 어떻게 하면 기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정책의 효과를 제고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왔다. 특히 정부가 연구개발(R&D)을 지원하여 나온 기술 결과물들이 시장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쌓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부처별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기술개발은 하고 있지만, 막상 R&D 과제가 끝나고 나면 해당 기술을 제품화로 연결시키려는 노력은 개별 부처 차원에서나 범정부 차원에서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R&D가 R&D로만 끝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지난 16일 ‘기술사업화협의체’를 발족시켰다. 협의체에는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7개 부처에서 R&D 과제 지원을 전담하는 기관 10곳이 대거 참여했다. 이로써 부처별로 흩어져 있던 미활용 기술의 활용도를 높이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협의체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앞으로 보유 기술정보를 전면 공유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에게 전달하는 한편, 기존에 각 부처에서 산발적으로 마련해놓은 기술이전·사업화·투융자 플랫폼을 공유함으로써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이 시장에서 원활하게 탄생할 수 있도록 협업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기술은행(NTB)에 각 부처와 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정보를 한데 모으고, 기술·시장 정보가 필요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기술이전 설명회와 상담회를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물론 정보만 공유한다고 해서 기술에 대한 기업들의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들이 법률, 회계, 마케팅, 인수합병(M&A), 기술평가, 인력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체계적인 사업화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전문가 자문단도 운영하기로 했다. 기업들은 1,100여명에 이르는 전문가들과의 밀착형 상담을 통해 실질적 혜택을 받아갈 수 있다. 보건, 환경, 에너지 등 연관성 있는 분야의 기술 정보를 연계하여 융합형 R&D 과제를 기획할 수도 있다. 또한 산업기술진흥원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펀드와 R&BD 과제도 기술사업화 협의체에 함께 참여하는 기관들에게 개방해 나갈 것이다.
기술사업화 협의체는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고 국가 기술정보의 개방과 공유를 통해 시너지를 추구해 보자는 정부 3.0 프로젝트이다. 기술사업화 분야에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개방형 협업이기 때문에 어떤 열매를 맺게 될지 필자도 참 궁금하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기술정보를 얼마나 개방했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그보다는 결과적으로 기술의 활용도를 얼마나 높였으며, 이를 통해 얼마나 새로운 부가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기술사업화 협의체가 기술사업화 지원기관 모두의 관심과 노력을 바탕으로 부처간 진정한 소통과 협력의 채널로 자리매김하고, 나아가 창조경제형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김정유 기자 thec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