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대표적인 ‘장수 CEO’ 3인
‘옷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다’는 말이 재계에서는 그다지 통용되지 않는 듯하다. 오너일가가 아닌 전문경영인이라면 자신이 맡고 있는 회사가 실적을 내지 못하면 그 책임을 지고 옷을 벗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까닭이다.
전쟁터나 다름없는 기업환경에서 항상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전문경영인들은 말 그대로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목숨’이 돼버렸다.
실제로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500대 상장기업(2008년 매출액 기준)을 대상으로 지난 2000~2009년 최고경영자(CEO) 재임 기간을 분석한 결과 평균 재임 기간은 3.3년으로 나타났다. 1년 이하 재직이 26.7%나 됐고 1~3년이 64.3%에 달했다.
물론 예외는 있다. 10년 가까이 한 증권사에서 최고경영자로 승승장구하는 대표적인 장수 CEO가 그들이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김해준 교보증권 사장, 서태환 하이투자증권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세명의 사장은 탁월한 실적, 위기관리, 빠른 의사결정, 자기 계발, 명확한 비전 제시와 실행 등의 공통점이 있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1년이 멀다 하고 바뀌는 증권업계에서 보기 드문 대표 장수 CEO다. 2007년부터 매년 연임에 성공해 올해로 8년째 한국투자증권을 이끌고 있다. 현직 증권사 사장 중에선 최장수다.
한국투자증권은 업황 부진으로 증권업계가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도 지난해 8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 2011년과 2012년 회계연도에는 각각 2103억원, 1920억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3년 연속 순이익 1위를 기록했다.
유 사장은 주식거래 수수료 의존도가 절대적이던 증권업계에서 브로커리지 비중을 40% 정도로 낮추고 투자은행(IB)과 자산관리(AM)에서도 각각 30%의 수익을 내게끔 체질을 고쳤다.
김해준 교보증권 사장도 2008년 6월 취임 이후 4번째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 사장은 업계 불황 속에서도 양호한 성과를 낸 점과 역점 사업인 투자은행(IB) 분야에서의 전문성 등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교보증권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무려 426%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5764억원으로 53.7% 감소했지만 당기순이익은 113억원으로 6.5% 증가했다. FICC(채권·통화·원자재)팀을 강화하는 등 차별화된 사업 영역 발굴을 위해 적극 나선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특히 거래 채널을 다양화하며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인수 건수가 급증했고 자산유동화 부문 인수금융 수익도 급상승했다. 채권자본시장(DCM) 부문 발행실적도 개선됐으며 경쟁력 있는 신탁상품 개발로 신탁상품 잔고가 1조원에서 9조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교보증권 신탁부서는 업계 최초로 영업부서로 성공적으로 전환함으로써 14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유럽 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신용부도스와프(CDS) 거래와 신용연계채권 평가이익 등 장외파생상품 부문에서도 수익이 늘어났다.
2008년 하이투자증권이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로 편입될 당시 부임한 첫 사장이었던 서태환 사장도 2008년 9월 취임 이후 3번째 연임을 이어 나갔다.
하이투자증권도 비교적 무난한 실적을 기록했다. 지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 연속 흑자행진을 기록했다. 또 서 사장은 두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회사의 자기자본을 2배 이상 확충하는 등 안정적인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와 함께 업계 4위 규모의 퇴직연금 유치와 업계 최초의 공모형 선박펀드를 출시하는 등 그룹의 사업역량과 재무활동이 연계된 시너지 효과를 성공적으로 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외에도 신탁업과 장외파생상품사업 등의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등 수익원을 다변화시키면서 하이투자증권을 자산관리형 종합금융투자회사로 성장하도록 이끌어왔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사 안정을 위해 CEO를 유임시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며 “특히 장수 CEO의 경우 안정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회사와 두터운 신뢰관계를 형성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선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