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동영 한국SR전략연구소장ㆍ배재대 겸임교수
자동차 업계로선 반가울 일이다. 내년 1월 시행 예정인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쓸데없는 규제인지 확실치 않지만 적어도 논란이 커지고, 공직사회가 부담을 느낄수록 유리해지는 구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차를 살 때는 부담금을 물리고, 배출량이 적은 차를 살 때는 보조금을 주는 이 제도는 국산차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규제’라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최근 환경부 장관과 업계 CEO 간 간담회에선 “저탄소협력금제 도입을 7년 연기해 달라”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 차업계의 환경기술이 부족해 수입차에 시장을 다 내줄까 걱정이란 설명이었다. 유럽보다 이 부분에서 뒤처지는 미국의 자동차업계도 한·미 FTA를 들먹이며 가세하는 모양새다.
이쯤에서 규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과 맞닿은 지점을 확인해 보자. CSR는 크게 보면 기업이 사람과 지구에 대해 책임을 지는 활동이다. 지구환경, 특히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요즘 화두인데 그 주범 가운데 하나가 이산화탄소다. 탄소배출을 줄이는 게 기후변화를 저지하고 지구를 살리는 길이란 대원칙 아래 탄소세를 비롯한 각종 규제가 여러 나라에서 양산되고 있다. 저탄소차 협력금제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우리 자동차 업계를 위기에 빠뜨리려는 음모 섞인 규제가 아니라 지구환경을 위한 최소한의 전진이라는 게 정부나 CSR 전문가들의 생각이다. 물론 정부안에서도 완성차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며 “피해를 보지 않도록 환경부와 협의하겠다”는 부처가 있지만 대세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CSR가 아무리 의미 있고, 기업 이미지를 높여 주는 핵심 전략이라고 해도 많은 기업들은 적지 않은 부담을 호소한다. 상장기업이 사업보고서에 CSR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토록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나 국민연금기금이 친환경(environment), 사회적 기여(social),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 등 비재무적 요소(ESG)를 고려해 기금을 관리·운용토록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가 추진 중인데, 기업엔 모두 걱정거리일 뿐이다. 실제 산업현장에선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름의 또다른 규제일 뿐”이란 불만이 적잖게 들린다. “무분별한 의원입법은 규제의 황사 같은 존재”라는 한 학계 인사의 지적이 반가울 듯하다.
규제는 무척 복잡한 문제다. 원칙적으로 규제는 시장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수단이다. 21세기 시장경제가 약육강식의 원시사회도 아니니 공정한 경쟁을 강제하는 수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게 규제의 원칙이다. 이미 시행 중인 규제는 경쟁자의 신규 진입을 막는 역할도 한다. 우리 경제의 핵심인 대기업은 규제의 수혜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다.
기득권을 가진 기업들로선 불리한 규제가 새로 생기지 않도록 막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이럴 때 동원되는 게 ‘규제는 악’이란 관념이다. 기업들이 규제개혁 열풍에 편승, 불리한 규제를 없애고 새로운 규제를 막는 데 열중한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 CSR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스스로 CSR를 잘 실천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걸 강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비윤리적 행위를 하면, 지구환경을 훼손하면, 근로자의 인권을 훼손하면 유무형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각종 법률로 구체화하고 좀더 강한 제재가 따르는 게 요즘의 흐름이다. 탄소세나 저탄소차 협력금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순기능적 규제다. 적어도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좀더 나은 환경의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CSR에서 앞서가는 글로벌 기업들은 CSR와 관련해 새로 생기는 규제들을 무기로 활용한다. CSR에 뒤처지는 기업들이 규제를 없애라, 만들지 말라며 볼멘소리를 하는 동안 그들은 신무기를 장착하고 경쟁우위를 다져 나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당장 CSR 원칙 아래 새 경영전략을 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