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정부 출범 이후 급격한 엔화 약세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일본의 무역수지는 사상최대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사상최대의 흑자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산업연구원(KIET)이 작성한 ‘최근 엔저 이후 한·일 교역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엔저로 인한 일본의 가격경쟁력 개선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일본의 수출은 대폭 감소한 반면, 한국은 회복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원에 따르면 난해 일본의 무역수지는 사상최대인 1176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반면, 한국은 오히려 441억 달러의 사상최대의 흑자를 달성했다.
일본의 무역적자 확대는 엔저로 인한 가격경쟁력 개선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달러 기준 수출이 10.5%나 대폭 감소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기업들이 엔저에도 불구하고 제품단가 인하보다는 이익 확대와 경영체질 개선에 주력하는 가운데, 2000년대 들어와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경쟁력의 약화와 대중국 수출 부진 등으로 엔저의 효과가 약화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한국의 수출은 작년 1분기 0.7% 증가에서 3분기 2.7%, 4분기 4.7%로 회복세를 보였다. 이처럼 한·일 간의 수출이 상반된 흐름을 보이면서 2010년 일본 수출의 60.7%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수출규모가 2013년에는 78.3%까지 상승했다.
연구원은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선박 등 한국 주력 수출산업의 경쟁력이 향상된 반면, 일본의 경쟁력은 약화됨으로써 엔저의 부정적 영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으로 평가했다.
반도체의 경우 일본 수출은 오히려 13.0%나 감소한데 비해, 한국은 12.7%나 증가했다. 휴대폰도 한국 수출이 20% 이상 증가했으나 일본은 수입이 늘어나 무역적자 확대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동차(부품 포함)도 일본기업의 해외생산 확대로 일본 수출은 줄어든 반면, 한국은 국산차의 경쟁력 향상 등으로 수출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엔저기간 중에도 한국의 수출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일본기업의 해외생산 확대로 우리 수출에 미치는 엔저의 부정적 영향이 축소된 것이 큰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이밖에 우리나라 수출의 25%, 일본 수출의 18% 정도를 차지하는 중국시장에서 중국의 전기전자산업 발전, 성장패턴 변화, 반일 감정 확산 등 교역환경 변화도 엔저하의 한·일의 대중국 수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의 전자산업 발전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부품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대중국 수출확대에 기여한 반면, 중국의 성장패턴 변화에 따른 투자 둔화 등은 기계류의 경쟁력이 강한 일본의 대중 수출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중국의 반일 감정이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으로 확산돼 자동차 등 분야에서 한국이 반사이익을 누렸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지난해 중국의 대한국 수입은 7.7%가 증가했지만, 대일 수입은 10.5%나 감소해 우리나라가 중국시장에서 일본을 제치고 사상처음으로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한편 일본 닛케이 평균주가는 지난해 56.7%나 상승한 데 비해 한국 KOSPI지수는 불과 0.7% 상승에 그치는 등 지난해 주가에 반영된 한일간 기업이익의 차이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엔저에 힘입은 일본기업의 이익 증가가 지속될 경우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수출가격 인하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엔저와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한·일 양국 기업의 이익 격차 확대가 중장기적으로는 기술개발 등 투자에 반영됨으로써 우리 제품의 수출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전기전자산업에서 일본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설 경우 차세대제품을 중심으로 현재의 대일 경쟁우위도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현수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은 엔저를 수출 구조고도화와 신성장산업 육성을 통해 극복하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가격경쟁력 약화를 상쇄하기 위한 해외생산 확대, 시장주도적 수출품목 개발 등을 추진하고, R&D 투자 확대로 비가격부문의 장기적 경쟁력 확보에 주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