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家 엘리트 출신 '왕자의 난' 희생자...현대상선 장악하나
현대상선 지분을 놓고 대결국면을 펼치고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측의 지분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측의 지분 현황이다(각각 우호지분 포함).
아직은 현 회장측의 지분이 높지만 향후 현대건설(현대상선 지분 8.69% 보유)의 인수에 따라 현대상선의 주인은 얼마든지 정몽준 의원쪽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6번째 아들 정몽준 회장. 5선 국회의원이자 대한축구협회 회장. 2002년 아버지 뒤를 이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 투표직전 포기.
일반적으로 알려진 정몽준 의원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정 의원은 정치인 보다는 경영인으로서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자신이 소유한 현대중공업이 현대그룹의 '알짜배기' 현대상선의 지분을 대거 사들이면서 정몽준 의원이 범(汎)현대그룹의 구심점으로 등장하게 됐다.
재계 일각에선 과거 이루지 못한 '현대그룹의 후계자'를 다시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만약 정몽준 의원측의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 8.69%를 포함해 41.63%로 현대상선의 대주주로 등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사실상 현대그룹이 정몽준 의원의 손에 들어오게 되는 셈이다.
◆ 정몽준, 현대중공업그룹의 실질적인 오너이자 총수
정몽준 의원은 공식적으로 현대중공업과 관련한 공식 직함은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2002년 대선 직전 현대중공업에 있던 직함을 모두 내놓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현대중공업의 지분 10.80%를 소유한 최대주주일뿐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현대기업금융, 현대기술투자, 현대선물, 미포엔지니어링 등 6개사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을 이끄는 구심점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정 의원이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유야무야(有耶無耶)로 미치는 영향력을 부인하는 그룹 내 관계자는 없다. 이미 총수이자 오너로서의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내에선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부르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금은 대한축구협회 회장이나 5선 국회의원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자산 규모 재계 순위 9위 현대중공업그룹 뒤에는 기업인 정몽준 의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그룹 내외부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 현대가(家)에서 보기 드문 서울대 출신 엘리트
그는 현대가에서 드물게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키워졌다. 고 정주영 회장은 "몽준이는 외모도 좋고 공부도 잘하니 경영을 시키면 잘할 것"이라며 일치감치 경영인으로 키웠다는 후문이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원(국제정치 박사),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대학원, MIT경영대학원(석사)을 나온 수재로 '신문대학' 출신인 '왕 회장'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신문대학이란 가정형편상 소학교만 겨우나온 정주영 회장이 자신의 지식의 대부분을 신문을 읽고 얻었다면서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즐겨 말하면서 붙여진 말이다.
특히 정주영 회장은 정 의원이 MIT석사 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인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지인들에게 자랑하기까지 했다.
지난 81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당시 31세였던 정 의원을 현대 중공업 사장에 임명하자 정 의원이 사실상 후계자로 낙점됐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이 일으킨 2000년 왕자의 난과 이듬해 정주영 명예회장이 사망하면서 현대그룹은 현대차,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현대중공업, KCC 등으로 산산조각 나면서 정몽준 의원의 후계자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번 현대상선의 지분매집에 대해 정 의원과 정상영 KCC 명예회장과 물밑교감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두 사람 모두 정주영 명예회장을 생전에 잘 따랐고, 사후에도 두 집안간의 왕래가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은 KCC의 지분 6.41%를 소유하고 있기도 한다.
이 때문에 현대그룹 측에선 "현정은 회장측을 제외한 범(汎)현대가에서 그룹의 모태인 현대그룹을 '정(鄭)'씨의 현대그룹으로 바꿔 놓기 위해 정 의원이 총대를 멘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년 전 이미 한 차례 정상영 회장이 일으킨 숙부의 난을 겪은 현정은 회장측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라 듯'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가의 형수 대 시동생간의 1차 공방은 시동생의 판정승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현대그룹의 경영권에 대한 불씨는 완전히 사그라지지는 않았다. '숙부의 난'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인수할 수 있을지 정 의원의 행보가 주목받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