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녀 자살과 ‘1대99’ ㆍ‘겨울왕국’ [배국남의 직격탄]

입력 2014-03-06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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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숨진 채 발견됐다. 어머니와 두 딸이. 지난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 박모(60)씨와 큰딸 김모(35)씨, 작은 딸(32)이 목숨을 끊으며 70만원과 함께 지상에 남긴 마지막 글이다. 박씨의 남편은 12년전 암으로 숨지며 많은 빚을 남겼고 두 딸은 당뇨와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데다 신용불량상태였다. 60대 박씨가 식당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다 한달전 박씨마저 다쳐 식당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이러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단 한 번도 집세와 공과금이 밀리지 않았고 죽는 순간까지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했던 박모씨와 두 딸의 모습과 죽음이 많은 이의 가슴을 아리게 만든다.

정말 죄송해야할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집주인에게 최선을 다하려했던 박모씨와 두딸이 아닌 우리다. 우리 사회다. 우리 정부다. 어쩌면 박씨와 두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사회안전망과 복지시스템의 부실이 낳은 사회적 타살이다. 물적 소유에 대한 욕망을 확대재생산하며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이 그들을 차가운 사지로 내몰았던 것 아닐까.

2014년 대한민국은 인구 20%의 부와 행복을 위해 나머지 80%의 빈곤과 비참을 강제하는 ‘20대 80 사회’, 아니 ‘1%의 탐욕 그리고 99%의 분노’로 대변되는 1대 99라는 극단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신자유주의:간략한 역사’에서 주장한 것처럼 주고 되돌려받는 ‘전유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through appropriations)’시대가 끝나고 주는 것도 없이 빼앗아버리고 빚지게 하는 이른바 ‘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through dispossesion)’의 코드가 지배하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가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다.

고용 없는 성장 속에 일자리를 잡지 못한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자식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로 전락하고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피하지 못한 중년층은 빚으로 연명하다 신용불량자로 내몰리며 위기에 처해 있다. 빈곤층은 빚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생명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박모씨와 두 딸 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의 사회안전망은 허술하기 그지없고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국민을 위한 복지대책은 당선과 함께 허언(虛言)으로 변하는 선거 공약에만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의 부실과 정부와 공공기관의 허술한 대응, 그리고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으로 오늘도 서민과 빈곤층은 위험한 벼랑에 서 있다.

위기에 선 사람들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것은 이뿐만 아니다. 재벌 등 1%로 대변되는 가진 자들의 끝없는 탐욕과 물적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급증, 그리고 이들의 극단의 이기심이 절망 속에 빠진 힘든 사회적 약자를 어둠의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구입한 과자 이름과 감자 몇 알까지 정갈한 글씨로 가계부에 적었을 정도로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살았던 결과는 박 모씨와 두 딸의 빈곤 탈출이 아니라 바로 죽음의 선택이었다. 99%를 상대로 한 1% 자본가의 탈취와 탐욕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며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자본가의 탐욕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물적 소유를 확대하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일부 계층의 탐욕과 탈취의 확대재생산으로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는 사회적 약자가 급증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한 세모녀의 비극. 하지만 그 비극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튼실한 사회안전망 구축 그리고 어려운 이에게 따뜻한 손을 내미는 우리의 마음만이 제2의 세모녀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겨울왕국’에서 심장이 얼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것은 진정한 사랑이었다. 그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 사회안전망과 우리의 따뜻한 손길로 극단적인 선택을 피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라고 한 박모씨와 두 딸의 죽음 앞에 우리는, 우리 사회는, 우리 정부는 정말로 죄송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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