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 오른 '정몽구式' 경영

입력 2006-04-19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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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현대차 정회장 경영스타일에 경계령

"삼성은 되고 현대차가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자신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편법경영권 승계파문 등이 불거지자 6개월 간의 장기해외외유를 떠나서 별탈 없이 돌아 온데 반해, 기습적인 미국출국을 강행한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고작 1주일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것을 두고 재계에서 떠도는 유행어다.

제각각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재계에선 '정몽구' 경영의 부작용이라는 주장이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다.

정몽구식 경영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정 회장의 미국출국 강행이었다. 정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일부경영진은 출국반대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률자문회사가 "법적으로 출국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조언하자 정 회장이 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퇴직한 전 현대차 임원은 "정 회장이 결정한 사안에 누구도 토를 달기 어려운 그룹 분위기 상, 출국반대를 강력하게 제시하는 경영진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 회장에게 '자리를 걸고' 바른 소리를 할 임원이 많지 않은 것이 현대차그룹의 현주소"라고 덧붙였다.

◆ 정몽구식 경영스타일이 뭐길래?

정몽구식 경영스타일을 언급할 때 '럭비'는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대해 저돌적인 럭비경기와 꼭 닮았다고 평가하는 이가 많다. 정 회장은 경복고 때 럭비선수였고 지금도 럭비 마니아를 자칭하면서 그의 경영스타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모든 걸림돌은 정면돌파한다'는 그의 경영철학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나를 따르라' 식의 불도저식 경영을 펼쳤던 것만은 아니었다.

"럭비는 팀 구성원이 열다섯 명이나 되기 때문에 많은 선수들간의 협동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또한 자기 위치에서의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선수들 하나하나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또한 중요하다."

이처럼 정 회장은 평소 임직원에게 저돌적인 승부근성과 함께 직원간의 스킨십을 통한 팀워크 강화를 강조해 왔다. 럭비는 치열한 몸싸움이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경기다. 그렇기 때문에 팀워크는 생명과도 같다는 게 정 회장의 지론.

정 회장은 고교시절 럭비를 하면서 얻었던 교훈을 통해 훗날 기업조직에서 팀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고 임원들에게 자주 강조해 왔다.

◆ 정 회장, 아들 경영권 안정 위해 팀워크와 스킨십 포기

이처럼 팀워크과 스킨십을 강조했던 정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급변하게 된 것은 지난해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씨가 기아차의 대표이사로 경영전면에 나서면서부터다. 당시 한 달에 1번 꼴로 수시로 인사가 이뤄지면서 정몽구식 경영의 핵이었던 팀워크과 스킨쉽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이때부터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수시 인사를 통해 긴장감을 갖도록 함으로써 절대적인 권위를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시 인사는 그의 외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등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올해 만 36세 불과한 정 사장의 원활한 세대교체를 위해서 원로들을 대거 퇴진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정 회장의 최 측근이자 창업 1세대인 박정인 현대모비스 회장이 고문으로 물러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바로 이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퇴직한 임원이 검찰에 비자금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제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채동욱 대검찰청청 수사기획관은 지난 12일 "(현대차 관련)제보자는 단수(한명)이다"라며 "수사에 도움을 많이 줬다"고 밝혔다.

결국 외아들의 경영권 안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경영스타일 가운데 핵이었던 팀워크와 스킨쉽을 포기한 정 회장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황에 대해 재계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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