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퇴직임원 모임 활성화

입력 2006-04-19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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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사태 '타산지석'...퇴임후 활동 적극 지원

재계‘올드보이’의 파워가 막강해지고 있다.

현대차의 '비자금' 사태가 내부 고발자의 제보에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가 집안 챙기기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한 예로 검찰이 벽 속에 숨겨진 비밀금고 등 물증을 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재계는 당혹감을 금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기업의 속사정을 낱낱이 알고 있는 퇴직임원들의 모임에 대한 위상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퇴직자 모임은 단순히 사랑방 역할로 만족했다. 취미생활이나 자원봉사활동 등을 하는 ‘OB커뮤니티’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이번 현대차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도 둥지를 떠난 임직원들을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구축하거나 기금 및 사무실을 제공해 인연의 끈을 이어가고 있고 일부 기업은 퇴직자 활동에 일정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선 그룹 총수가 직접 정기적인 모임을 주최하고 OB들의 자문을 듣거나 친선도모 골프모임을 갖는 등 전·현직 임원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화에 나섰다.

퇴직임원들의 공식모임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그룹 중 하나는 삼성. 삼성그룹에서 대표이사까지 지낸 경영자들의 모임인 ‘성대회(星代會)’, 퇴직임원까지 회원의 범위를 넓힌 ‘성우회(星友會)’, 삼성물산 출신 퇴직 동우회인 ‘삼동회’, 삼성SDS출신 중에 벤처CEO 모임인 ‘SDS4U’, 삼성퇴직 임직원의 헤드헌팅모임인 ‘삼성OB닷컴’ 등으로 수적으로나 결속력 면에서 가장 탄탄한 OB커뮤니티를 자랑한다.

◆삼성 퇴직임원 관리 철저

재계에선 "내부고발자로 인해 현대차와 SK가 백기투항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달리 줄기찬 검찰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별 탈 없었던 것도 퇴직임직원에 대한 '후한'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퇴직자 모임 가운데 삼성그룹에서 대표이사 이상의 최고경영자들을 중심으로 한 성대회가 가장 파워있는 OB모임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이필곤 전 삼성 중국본사 출신이 회장을 맡아 진두지휘하고 있다. 실무를 맡은 간사는 홍종만 전 삼성자동차 삼성코닝정밀유리 사장이다.

특히 이필곤 회장은 삼성 재직시절 이수빈 전 삼성생명 회장과 쌍벽을 이루었던 스타급 전문경영인. 이 회장은 이후 서울시 부시장으로 공직에 잠깐 몸을 담았다가, 지승림 전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팀장이 경영하던 벤처인 알티캐스트의 회장직을 지금까지 맡으며 경영자문과 함께 삼성과의 네트워크 연계를 담당해 오고 있다.

사실 성대회는 널리 알려진 삼성OB모임은 아니다. 현재까지 76명의 전직 대표이사 출신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오히려 대외적인 활동보다는 현직 삼성CEO들과의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경영에 대한 조언을 해 주는 내부적 역할이 더 크다.

반면 800여 퇴직 임원들이 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성우회는 대외적으로 삼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홈페이지까지 운영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93년에 창립된 성우회는 현재 회원이 100여 명에 이른다. 회장은 이두석 전 조선호텔 사장이 맡고 있으며 거의 매일 논현동 우정빌딩 성우회 사무실로 출근한다.

한 달에 2회 있는 오찬 특강에는 50여 명 정도가 꾸준히 출석해 호응이 높다. 20년 이상 삼성그룹 계열사에 근속한 50세 이상 퇴직 임직원이면 누구나 이 센터를 1년간 이용할 수 있다. 이들은 한 명당 3평 규모의 창업연구실을 배정받고 창업하려는 업종이나 품목에 대한 시장정보 등을 관계회사로부터 제공 받는다. 문서작성 은행입출금 우편발송 차서비스 등을 대행해주는 공동 비서도 곁에 있다.

OB커뮤니티 강화에 LG도 예외 일 수 없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5층짜리 부호빌딩은 LG 퇴직임원의 보금자리인 ‘LG클럽’이 자리잡고 있다. 2층부터 5층까지 200평 사무실을 쓰고 있는 LG클럽은 규모면에서 다른 OB모임을 압도한다.

현재 1000명이 넘는 LG클럽의 회원들 중에 ‘별 중의 별’이라고 할 수 있는 사장단(사장부터 부회장까지)은 퇴임 후 고문으로 위촉된다. 이 고문단은 8평 규모의 개인 사무실을 통해 모기업과의 ‘핫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LG그룹의 ‘퇴직임원 껴안기’는 동고동락(同苦同樂) 동생동사(同生同死)에 밑바탕을 두고 있다. 즉, 기업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임원급이 갖고 있는 여러 노하우는 고스란히 다른 곳에 팔릴 수 있기 때문에 예우차원을 떠나 비밀유지차원에서도 OB모임의 구축은 필수란 것.

‘한번 한화인은 영원한 한화인’이라는 전투적인 색채가 짙은 슬로건을 통해 단합을 강조하고 있는 한화그룹 전·현직 임원들의 친목단체인 ‘한화회’도 활발한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울 서소문동 한화빌딩 12층에 위치한 ‘한화회’는 지난 95년 김승연 회장과 일부 퇴직임원이 중심이 되어 운영해 오던 친목회를 보다 강하게 확대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퇴직임원들로만 구성된 다른 OB모임과 달리 전·현직을 아우르면서 친목의 장을 넘어 때로는 그룹의 자문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다.

전체 회원 수는 560명, 매년 초 서울 태평로 프라자호텔에서 정기총회를 갖고 당해 사업계획과 한화회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나눈다.

당초 골프, 등산, 바둑 등 친목 동호회 중심으로 운영되다가 퇴직모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전국에 있는 한화 계열사의 공장과 사업장들을 둘러보는 이벤트를 갖기 시작했다. 회사를 떠났지만 지속적으로 회사에 관심과 애정을 갖자는 취지다.

코오롱의 ‘송죽회’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송죽회는 퇴직임원 모임의 원조격으로 지난 70년대 중반 회사에 재직 중이던 임원들이 주축이 돼 모임을 만들었다. 현재 서울 무교동 사옥에 사무실을 두고 회원들의 경조사를 챙기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 현대차, SK 퇴직임원에 대한 관리 소홀

반면, 현대차와 SK는 그동안 퇴직임원에 대한 관리가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검찰조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이유를 여기에서 찾는 기업들이 많다.

기업규모에 걸맞지 않게 현대차는 전무급 이상이 퇴직할 때만 ‘필요에 따라’ 1년 간 고문으로 위촉하고 급여의 80%를 지급하는 게 고작이다. 현대차의 한 퇴직임원은 "삼성의 총수가 검찰의 조사를 피해 장기간의 해외 외유를 해도 별탈이 없었던 것도 입이 무거운 퇴직임원 때문"이라면서 현대차에서 퇴직하면 그야말로 '팽(烹)'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SK는 아예 그룹 단위의 퇴직 임직원 모임이 없다. 간판기업들이 M&A를 통해 그룹에 편입되어 버린 속사정 때문.

단지 과거 계열사 중심 모임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정도다. 옛 유공 출신들이 주축이 된 ‘유경회’와 SK글로벌(구 선경)의 ‘선우회’가 그 곳. 유경회는 지난 92년 만들어졌으며 현재 30여 명의 퇴임 임원이 속해 있다.

회사에서는 강남과 여의도에 사무실을 임대, 매일 사무실에는 10여 명 이상의 퇴임 임원들이 나와 상호간의 정보 공유와 회사의 경영과 관련한 이슈가 있을 때 자율적으로 협의해 공식·비공식적인 체널을 통해 자문을 해 주고 있다.

이 밖에 포스코 전직 핵심 멤버 150여명이 회원으로 가입된 ‘포스코 중우회’가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이 회장직을 맡아 활동 중이며, CJ(옛 대상)의 ‘미성회’, 현대건설의 ‘현건사랑’ 등에서 퇴직임원 모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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