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육계, 최경주 이정표 세워라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4-01-19 17:52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사진=AP뉴시스)

최경주(44ㆍSK텔레콤)의 겨드랑이엔 숨겨둔 날개라도 있는 것일까.

최경주의 끝도 없는 선행이 갑오년 새해 시작부터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지난 8일 골프 꿈나무 육성을 위해 사재 1억6000만원을 자신의 재단에 기부했다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의 선행에는 계절도 장소도 국경도 없었다. 지난해 6월에는 경기 안산의 한 지역아동센터에 ‘꿈의 도서관’을 개장하는 데 앞장섰고, 12월에는 월드컵 골프대회에서 받은 상금 전액(10만 달러)을 필리핀 태풍 피해 복구를 위해 기부했다. 탱크라는 닉네임만큼이나 거침없는 기부다.

한해 수백만 달러의 수입을 챙기는 프로골퍼로서 어렵지 않은 결정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선행은 결코 수입 순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의 선행에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잦은 사건ㆍ사고로 신뢰를 잃어버린 한국 체육계에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국 체육계는 지난해 참으로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끝도 없는 승부조작 파문은 왕년 농구스타 강동희의 구속으로 이어졌고, 승부조작 가담으로 영구 제명된 과거 국가대표 축구선수 최성국은 또 다시 음주운전 파문을 일으키며 맹비난 받았다. 여자프로골퍼 이정연은 음주운전 후 경찰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여자 역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은 여대생 청부살해범 윤모씨(68)의 남편인 류모씨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에 사인해 네티즌의 분노를 샀고, 한국 농구의 기대주였던 정상헌은 은퇴 후 끔찍한 살인자가 돼서 팬들 앞에 나타났다.

사건ㆍ사고 원인은 대부분 돈이다. 그래서 최경주의 선행이 더 가치가 있다. 최경주는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우연한 계기로 골프채를 손에 쥐었다. 골프의 ‘골’ 자도 몰랐던 섬 소년은 골프연습장에서 골프공을 주우며 골프의 기본을 익혔다. 돈에 대한 절박함이 누구보다 강했지만, 어렵게 배운 만큼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했다.

무엇보다 기부를 통한 소통에 앞장섰다. 최경주의 기부는 골프라는 좁은 울타리를 뛰어넘어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골프가 대중화됐다고 해도 아직까지 골프에 대한 선입견이 많다. 수도권 대부분의 골프장은 시즌 중 부킹이 어렵다. 값비싼 골프채에 골프의류, 각종용품, 연습비용, 그린피(캐디피) 등을 전부 감안하면 웬만한 월급쟁이는 입문조차 힘들다. 어쩌면 골프에 대한 이질감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최경주는 가난한 섬 소년도 골프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골프 입문 20여년이 지난 지금은 절박한 심정으로 골프공을 줍던 완도 소년에서 PGA투어 톱플레이어이자 골프 꿈나무들의 후원자가 됐다. 그래서 그의 선행은 세대간, 계층간, 이웃간 소통이라는 큰 의미가 내포돼 있다.

최경주의 행보는 이제 한국 체육계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 체육계 불미스런 사건ㆍ사고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한마음 한뜻으로 선수들을 응원했던 스포츠팬들의 관심과 사랑은 깊은 상처가 돼서 돌아왔다. 돈과 권력으로 멍든 한국 체육계에 이보다 좋은 이정표가 있을까. 축구계 최경주, 농구계 최경주 탄생을 바란다면 말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