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감시를 내면화하는 관찰카메라 시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4-01-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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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관찰카메라 시대다. 이제 TV만 켜면 우리는 누군가를 관찰할 수 있다. 카메라는 곳곳에 숨겨져 있고 그 숨겨진 카메라는 피사체의 일거수 일투족을 무감정하게 기록한다. 그 기록들은 PD에 의해 편집되고 자막이 붙여지면서 스토리텔링돼 방영된다. 종교의 시대에 신의 예정된 세계가 인간의 역사를 기록했다면, 관찰카메라 시대의 신은 편집자다. 그의 손길에 따라 피사체의 삶은 재단된다. 이 모든 것을 관찰하는 카메라의 시선 속에는 이제 태어난 지 몇 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부터 칠순을 훌쩍 넘긴 어르신까지 닿지 않는 것이 없다. 적어도 대중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으로서의 TV라는 공간 속에서는.

사실 ‘무한도전’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카메라는 그나마 거기 비춰지는 것들이 쇼라는 걸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일상 속으로 들어와 숨겨져 모든 걸 찍어내는 관찰카메라는 삶 자체를 쇼이자 스펙터클로 만든다. 가상극을 재료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을 재료로 한다는 점에서 관찰카메라는 일상에 닿아 있다. 과거 예능 프로그램들은 특별하게 고안된 상황 속에서 게임을 했지만 지금의 예능 프로그램의 상황은 점점 우리 생활 그 자체가 되고 있다.

즉 ‘1박2일’ 같은 여행 버라이어티는 그나마 여행이라는 특별한 순간을 소재로 잡았고 그 인물들도 인위적으로 엮어진 출연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우리는 강호동이나 이수근이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그렇게 만나 여행을 갈 것이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예능은 여행을 가도 진짜 가족이 함께 간다(아빠 어디가). 아니 여행 자체를 벗어나 그저 가족의 일상으로 들어오기도 한다(슈퍼맨이 돌아왔다, 자기야-백년손님).

이른바 체험 형식의 리얼 예능 프로그램도 과거처럼 단 한 번의 도전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즉 예를 들어 ‘무한도전’이 프로레슬링을 하거나 봅슬레이를 타고 또 조정경기를 하는 건 그 직업 속으로 들어간다기보다는 일회적 도전에 가까웠다. 하지만 관찰카메라 시대의 체험 형식은 그 직업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실제로 그 직업인이 되어 살아가고 성장하는 걸 보여준다. ‘진짜사나이’는 진짜 군부대에 들어가고 ‘심장이 뛴다’는 진짜 소방서에서 살아간다. 과거 하룻밤을 야외 취침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지만 이제는 하룻밤으로는 진짜 체험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일주일 정도를 생활해야 완전히 그 삶에 동화된 그들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흔히 진정성에 대한 욕구로 리얼 영상을 표현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그것은 과도한 훔쳐보기 혹은 노출이 될 수 있다. ‘관찰카메라’라는 표현은 마치 무언가 현상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적으로 숨겨진 카메라처럼 포장돼 있지만, 과거 심리적 거부감을 주던 ‘몰래카메라’와 다르지 않고 길거리든 건물 안이든 어디든 숨겨져 우리의 일상을 찍어대는 CCTV와 다르지 않다. 관찰카메라라는 새로운 형식이 트렌드화되고 있는 건 그래서 이제 매일같이 우리네 일거수 일투족이 누군가의 카메라에 의해 찍히고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카메라에 너무 익숙해졌다. 따라서 쇼로서의 가짜 상황을 못 견뎌하게 된 것이다.

관찰카메라 전성시대가 보여주는 우울한 풍경은 어느새 우리가 누군가에게 자신이 찍히는 것에 대해 점점 둔감해졌고 또 그럴수록 누군가를 찍거나 혹은 그렇게 찍힌 영상을 훔쳐보는 것을 당연시 여기게 되었다는 점일 게다. 게다가 나아가 이런 관찰카메라의 영상은 우리들을 부지불식간에 교육시키기도 한다. 누군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과거 신의 시선이었으나 파놉티콘이라는 인간의 기계장치에 의해 대체됐고 이제는 카메라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그 시선에 우리는 점점 수동적으로 적응돼 가고 있다. 과연 카메라 앞의 이런 삶은 괜찮은 걸까. 아기부터 어르신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감시가 내면화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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