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대내외적 불안요인은
“그 어느 때보다 경영전략을 확정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한 달 단위로 수정하고, 새로 세울 만큼 장기 전략을 짜기 어렵습니다.”
국내 한 대기업 임원은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대내외의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해 이같이 토로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재’와 ‘호재’가 혼재하면서 한 번 세운 전략을 수없이 뜯어고친다는 설명이다.
◇경기회복 감지되지만… 환율 악재 어쩌나= 우선 재계가 2014년 해결해야 할 최대 난제로는 ‘환율 대응’이 꼽히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일본의 엔저(低) 현상으로 수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연평균 달러·엔 환율이 105엔으로 절하될 경우 국내 총수출은 전년 대비 2.2% 감소할 전망이다. 연평균 110엔, 115엔을 기록할 경우엔 각각 3.2%, 4.0%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3일 기준 달러·엔 환율은 뉴욕외환시장에서 104.73엔을 기록하며 엔저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이노베이션 등 수출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엔저 대책을 본격 수립하고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 해당 국가의 통화 결제비율을 높여 엔저와 달러화 하락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중공업 부문은 수주 금액을 선박을 인도할 때 대부분 받는 ‘헤비테일(Heavy Tail)’ 방식을 쓰고 있어 환율 변동이 당장 실적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수익성 악화를 피할 수 없다. 중공업 업계 관계자는 “수주할 때마다 발주업체와 견적환율 적용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경영환경의 호재로는 글로벌 경기 개선이 꼽힌다. 국내외 대다수의 경제연구소들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3%대 중반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내 경제성장률의 경우 정부가 3.9%, 한국은행이 3.8% 등 글로벌 수준을 웃돌 것으로 각각 예상하고 있다.
경기회복 신호가 나올 때 기업이 ‘퀀텀 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도 과감한 준비가 필요하다. 준비가 부족한 기업은 전반적인 성장세에서 홀로 뒤처질 수밖에 없어 상대적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재계가 올해 어떤 전략 상품으로 승부를 가르게 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최근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세계 경제의 회복에 대비해 ‘계획된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박 회장은 “경제위기 때는 살아남은 기업들이 회복기의 과실을 나눠 가졌지만, 이번에는 기업들 대부분이 잘 견뎌냈기 때문에 회복 자체가 과실을 가져다 주지 않을 것”이라며 “누가 더 계획된 준비를 했느냐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과실의 크기가 달라질 것이고, 준비된 자가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국내는 내수 부진에 노사 현안 산적= 재계의 대비가 시급한 분야로 노사 환경이 꼽힌다. 올해는 통상임금,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메가톤급 노동 현안이 산적해 있다.
우선 통상임금은 지난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노조의 추가 소송이 봇물을 이룰 전망이다. 특히 대표 조립산업인 자동차업계의 경우 현대차, 한국지엠, 르노삼성자동차, 기아차 노조 등이 추가 통상임금 소송을 준비 중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노사 현안은 각 기업이 실타래를 풀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에서 신속히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내수 시장에서 민간 소비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것도 재계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가계 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해 내수가 좀처럼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들의 민간부채가 줄어드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금융부채는 2007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81.5%에서 2013년 말에는 91%대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민간 기업의 금융부채도 2008년 말 GDP 대비 136%에서 2010년 말 123%까지 낮아진 후 2013년에는 다시 125%를 넘어섰다.
LG경제연구원 이한득 연구위원은 “전세 가격 상승으로 주거비 부담이 늘면서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가계도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2014년 가계와 기업 등 민간 부채 문제가 투자를 약화시키고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회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