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좋아하냐?”
2013년 하반기 안방 시청자들은 SBS 수목드라마 ‘상속자들’에 흠뻑 빠졌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중독성 강한 대사는 김탄 역의 이민호를 통해 완성됐다. ‘상속자들’은 자체 최고 시청률을 연신 경신하며 동시간대 1위를 기록했고, 마지막회 시청률 25.6%(닐슨코리아 전국기준)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김탄은 부유층 상속자이지만 가난상속자 차은상(박신혜)을 사랑한 전형적인 드라마 속 백마 탄 왕자님이었다. 다소 진부한 소재로 인식될 수도 있었지만 김탄은 팔색조 매력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최근 서울 소공동에서 만난 이민호는 “상황을 설정하지 않고 직접 빠져들어 연기했다. 새롭게 시도한 방식이었다”며 다채로운 김탄을 그려낼 수 있었던 비법을 전했다.
“전작에서는 연기를 설정하고 상황을 부여해 한두 달 동안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까 생각하는 편이었다. ‘꽃보다 남자’ 때도 안하무인 설정을 넣었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고민하지 않고 대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하고자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기했다. ‘상속자들’ 1회부터 20회까지 정리해보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올해 만 26살인 이민호는 18살 고등학생 역을 무리 없이 소화했다. 재벌 역할은 잘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잘 어울린다. 고등학생과 재벌은 이민호에겐 양날의 검이다. 자칫 고착화된 이미지로 연기에 제약을 줄 수 있겠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꽃보다 남자’ 이후로 재벌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그 전에는 가난한 역할만 했다.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등 풀어진 모습을 과거에 보였기 때문에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고등학생 역은 이번이 마지막이다(웃음). 이번에도 학교에서 내가 제일 맏형이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듯이 김탄의 매력은 차은상 역의 박신혜로 인해 더욱 크게 발휘됐다. 두 사람은 지난 2009년 CF를 함께 찍은 후 처음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다. 이민호는 박신혜와 찰떡호흡을 보였고 “서로 진짜 좋아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연기했기 때문에 박신혜와 호흡도 좋았던 것 같다. 실제 키스신을 찍고 난 후 ‘진짜 사귀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 말을 들으면 ‘역할에 잘 빠졌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박신혜뿐만 아니라 ‘상속자들’ 모든 배우들과 지금도 단체 채팅방을 가지고 있다. 연말이 가기 전 바람은 최대한 많은 배우들이 모여 다 같이 밥 먹고 싶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이민호는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김탄처럼 좋아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직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김탄 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바람을 표현했다.
“지금은 여자친구가 없다. 옆에만 있어도 힘이 되고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설레고 기분 좋은 사람이 나타났으면 좋겠다.‘상속자들’은 내가 추구하는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사랑의 정의를 내린 작품이다. 또 다시 좋아하는 여자가 나타나면 김탄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첫 눈에 저 사람이 나와 통할 것 같으면 오래 느낌을 받는 편이다. 그 느낌에 확신이 들 때까지 조용히 지켜보고 확신이 들면 직진한다.”
이민호는 최근 유하 감독의 영화 ‘강남블루스’를 차기작으로 확정했다. ‘강남블루스’는 1970년대 서울 영동개발지구(지금의 강남)를 배경으로 한 액션 느와르 작품이다. 이민호는 비운의 운명을 맞는 주인공을 연기하며 고난도 액션 연기를 소화할 예정이다.
“‘강남블루스’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이제 28살이 되기 때문이다. 26~27살의 남자는 소년 이미지와 남성성을 다 가진 나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남자로서 한 영화를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됐다고 생각해서 선택했다. ‘시티헌터’ 때도 액션을 찍었지만 현장의 한계를 느끼고 ‘다음에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무엇보다 남자 이야기를 잘 다루는 유하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드라마에서 영화로 영역을 확장 중인 이민호는 작년에 처음 앨범을 내고 투어를 진행했다. 이제 그의 팬은 국내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그는 아시아권에서 폭넓은 팬층을 형성하며 진정한 한류스타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책임감은 점점 커졌다.
“중국에서도 ‘상속자들’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의 내가 느낀 것은 ‘이제는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구나’라는 점이다. 날 사랑해주는 팬이 많은 만큼 여러 분야에서 활동해서 내 모습을 최대한 발전시키고 싶다. 작품에 있어서도 이전에는 1년에 한 작품을 했다면 이제 준비기간을 줄여 1년에 3~4작품을 해야 하는 배우가 됐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