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혼자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김범규 중소기업진흥공단 부이사장

입력 2013-12-3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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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부터 11세기 사이, 동북아시아에는 커다란 판도 변화가 일어났다. 중원 대륙은 70여년에 걸친 5대 10국의 혼란을 마감하고 송나라가 패권을 잡았다. 한반도의 후삼국은 고려가, 북방 유목민의 세계는 요나라가 통일했다.

거란족인 요나라가 송을 침략하기 위해 먼저 고려를 제압할 필요를 느꼈고, 993년 10월 수십만 대군을 동원해 고려를 침략했다. 성종은 최전방 안북부까지 나가 거란군과 맞서 싸웠으나 고려군 선봉장은 적에게 포로로 잡히고, 왕은 평양으로 철수했고, 또 겁을 먹은 조정 대신들은 북방 영토를 떼 주고 화친을 하자고 졸랐다. 마음이 흔들린 성종은 개경 남쪽으로 철수 준비를 명했다. 또, 관곡 창고를 열어 백성들에게 마음대로 가져가게 하고 남은 양곡을 모두 대동강에 수장시키라고 명했다.

이때 서희가 나서서 함부로 식량을 버리면 싸움을 계속할 수 없으니 양곡을 보전할 것을 주장하며, 적의 약점을 잘 살펴 기동을 한다면 물리칠 수 있다고 임금을 설득했다. 이지백 역시 선조들이 피 흘려 지킨 강토를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그 동안 임금이 고려의 전통을 금지하고 유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중국 풍습만 즐겨한 까닭에 민심이 이반된 것이라고 왕을 비판했다. 임금은 그 말을 옳게 여겨 화친하자는 의견을 물리치고 항전의지를 다졌다.

서희는 안북부의 땅을 떼 줄 경우 삼각산 이북 땅은 모두 고구려 땅이라고 주장하는 요나라의 논리에서 밀린다고 생각했다. 우선 전투에서 이겨 적의 예봉을 꺾고 나서 화친을 논한다면 고려와 거란사이에 있는 여진을 토벌하고 영토를 확장할 기회까지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소손녕은 대군을 몰아 안융진(평안남도 안주시)을 공격했다. 고려의 운명이 걸린 이 전투에서 중랑장 대도수와 낭장 유방은 병력의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험준한 지형으로 적을 유도해 기병을 무력화시키고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안융진의 승리는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강력한 기병에게 패전을 거듭하던 고려는 산악전으로 적을 압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급해진 소손녕은 고려에 사자를 보내 항복을 재촉했다.

처음에 고려 조정은 직급이 낮은 장영을 보냈는데 소손녕은 대신이 와야 한다며 장영의 대면을 거부했다. 모두들 적진에 사신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서희는 소손녕이 명예로운 형식을 갖춘 화친을 원하고 있음을 간파하고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

거란 진영에서 서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소손녕을 압박했다. 예상대로 소손녕이 고구려 영토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하자 서희는 고려 국호도 고구려를 계승한 것이며 도읍도 평양이라고 밝혀 소손녕의 주장을 일축했다. 거란 왕을 황제라고 치켜세우고, 군사를 일으켜 달려오게 만든 일은 고려가 거란 측에 폐를 끼친 일이니 매우 미안하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싸울 의자가 별로 없던 소손녕은 서희에게 말려들고 말았다.

이 담판으로 고려는 압록강을 중심으로 여진족이 거주하던 남만주까지 아우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으나 성급한 임금은 서희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친이 수립되자마자 사신을 거란 본국에 파견하고 서희를 좌천시켜 버렸다. 결국 고려는 압록강 남단에 강동 6주만 얻는 데 그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서희가 세치 혀로 거란의 대군을 물리쳤다”는 고사의 전말이다. 늘 그러하듯 주인공만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고사에는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국왕의 잘못을 질타한 이지백, 신하의 무례한 질책에도 잘못을 인정해 준 성종, 최전방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엮은 대도수와 유방, 그리고 엄청난 침략군에 맞서 싸운 이름 없는 병사들의 노력이 묻힌다면 역사에서 얻을 교훈이 없다.

한해 동안의 실적을 평가하고 보상이 이뤄지는 계절이 되었다. 모두들 공을 다투고 공을 포상하고 개인별 역량 평가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협력하는 사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열심히 노력한 모든 이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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