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삽화 방민준 골프칼럼니스트
골프 애호가들은 종종 골프를 인생에 비유하고 특히 그린을 인생의 축도로 본다. 이런 비유는 바로 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티잉그라운드에서부터 홀에 이르는 길을 찾는 과정은 인생과 너무도 흡사하다. 티잉그라운드에 서서 힘에 부치는 무리한 욕심을 부리거나 자만에 빠지면 홀이 숨기고 있는 덫에 걸려 참혹한 고통을 맛봐야 하고 치밀한 계획 없이 대충 덤벼도 기대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지레 겁먹고 수동적으로 임해도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코스의 전체 모습을 제대로 읽고 코스에 순응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현명한 전략을 세워 흔들림 없이 밀고나가는 골퍼만이 홀을 떠날 때 미소를 지을 수 있다.
골프를 하다 보면 ‘골프는 추상화와 다름없다’는 느낌을 종종 갖게 된다. 골프코스 설계가들은 전체적인 레이아웃에서 자연을 받아들여 호쾌함과 상쾌함 등을 즐기도록 배려하지만 코스 곳곳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미로와 함정을 숨겨두고 골퍼의 인내심과 상상력을 테스트한다.
이런 골프 코스의 특징을 한눈에 읽어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겉으로는 편안하고 쉬워 보여도 모든 코스는 자만과 만용을 부리는 사람에게 줄 벌칙을 숨기고 있다. 특히 그린은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과감한 결단력, 부지런함을 갖추지 않고선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정확한 거리, 경사도와 좌우의 기울기 정도, 잔디결의 상태와 잔디 길이, 수분 함량 정도, 중간의 둔덕이나 장애물 여부, 그린 주변의 지형, 심지어 바람의 세기까지 감안해 길을 찾아야 하는데 구력이 늘어갈수록 그린 읽기가 추상화 감상보다 어렵다는 생각이 더해간다.
학창시절 피카소나 달리 미로 등의 추상화를 대하는 순간 도대체 장난으로 그린 것인가 싶을 정도로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여러 번 그림을 대하고 그림 속에 숨은 비밀들을 하나하나 캐나가다 보면 그림이 생명을 얻고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가 깨닫게 되는 것과 흡사하다. 골프코스, 특히 그린은 처음에는 그 속에 숨겨놓은 함정이나 비밀통로 등을 간파하지 못한 채 대충 대하지만 숨은 길을 찾아내는 훈련을 하다보면 반도체칩의 회로처럼 길이 드러난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풍부한 상상력이다. 골프장에서 상상력은 무궁무진할수록 좋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미리 티샷이 날아가는 모습을 그려본 뒤 스윙을 하고 두 번째 샷, 어프로치 샷도 상황에 맞는 샷을 상상해본 뒤 게임을 풀어 가면 골프의 묘미가 확연히 달라진다. 아무 생각 없이 날리는 샷과 충분한 상상력을 거친 뒤 날리는 샷은 질이 다르다. 허공에 대고 활을 쏘는 것과 표적을 정해 활을 쏘는 것이 다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