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공포정치] 장성택 사형 집행, 북한에서도 유일무이한 이유는?

입력 2013-12-1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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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사형 집행

장성택 사형 집행이 뜨거운 감자로 부각되고 있다. 이는 북한 정권 수립 이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가문의 친인척 중에서 사형 사실이 대내외에 공개된 것은 장성택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김일성 주석 이래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숙청되고 처형된 고위 인사들은 많았지만, 장성택 사형 집행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지난 1950년대 박헌영을 필두로 한 남로당계 처형 이후 최초다.

당시 김 주석은 6·25 남침 실패로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지자 195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소련파'인 박창옥 등을 내세워 남로당계 인사들에게 그 책임을 덮어 씌웠다.

이후 북한은 이듬해인 1953년 8월 남로당계 숙청 재판을 열고 남로당계 2인자였던 이승엽을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 먼저 처형했다. 이어 1955년 12월에는 남로당계 수장인 박헌영에 대한 사형을 집행한 후 박헌영의 재판 기록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한 바 있다.

박헌영에게 적용된 혐의는 반당 종파분자·간첩 방조·정부전복 음모 등이다. 이는 장성택의 혐의와도 유사하다.

박헌영 이외에도 공개 처형은 김정일 체제 하에 무수히 일어났지만 사형 사실을 공개한 적은 극히 드물다.

일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으로 수백만의 아사자가 발생하고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그 책임을 서관히 전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에게 물었다.

서관히는 1997년 평양시민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됐다.

이후 김정일은 서관히 사건을 기점으로 3년간 북한 전역을 광풍에 몰아넣은 '심화조사건'을 총지휘한 채문덕 당시 사회안전부 정치국장을 지난 2000년 "당의 일심단결을 파괴한 간첩"으로 몰아 처형했다.

이어 북한 당국은 대량 아사자 발생과 심화조사건으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서관히와 채문덕에 대한 사형 집행을 주민 강연회나 내부 유선방송인 '3방송'을 통해 전역에 공개한 바 있다.

이밖에도 북한은 2010년 3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에게 물어 총살했고, 2011년 초에는 간첩죄로 류경 전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을 처형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형 집행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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