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열 변호사의 e금융이야기] 연금사회주의와 연금민주주의

입력 2013-11-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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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ㆍKAIST 겸직 교수

최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기관투자가의 경우 국내 상장회사의 지분율이 10%를 넘더라도 지분즉시공시 의무가 면제됐다. 그간 지분율이 10%를 넘으면 지분변동을 공시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국민연금은 특정 회사의 지분을 10% 미만으로 보유해 왔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상장회사 지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개별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진다는 문제가 생기게 됐다. 재계에서 연금사회주의 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연금사회주의’란 세계적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1976년 창안한 용어다. 즉 연기금이 대기업들의 최대주주가 되면 결국 연기금의 주인인 노동자가 연기금을 통해 기업을 움직이는 새로운 사회주의가 시작된다는 이론이다. 현재 국민연금 현황을 살펴보면 국내 상장기업 중 30여개 이상에 대해 최대주주의 지위에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기준 최대주주로 있는 기업의 이사감사 선임, 정관 변경, 보수한도 등 승인 건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했으며 그 건수가 274건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개별기업에 대한 지분율이 10%를 초과하게 됨에 따라 국민연금의 의결권에 대한 향후 입장 정리가 중요한 사회 현안이 될 전망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정부의 직·간접적 영향력 아래 있는 기관투자가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의결권을 강화하면 경제의 자율성을 해치고, 나아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기업의 경영활동을 위축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오히려 긍정적 면도 적지 않다고 본다. 우선 소수 지배주주의 전횡을 감시·견제가 가능해지며 기업의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치 논리에 의한 의결권 행사에 대한 우려도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모든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인 까닭에 실제 의결권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행사된다면 언론 모니터링과 여론 감시를 통해 불공정한 의결권 행사 가능성이 줄어들 수 있다.

물론 합리적이고 개관적인 의결권 행사 지침 등을 포함한 제반 안전장치에도 국민연금 보유 주식의 의결권 행사에 경제 논리 이상의 정치 논리가 개입될 여지는 있다. 경제에서도 어느 정도의 정치논리가 적용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경제민주주의 이념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의사결정의 독립성뿐만 아니라 의결권 행사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돼 그 객관성이 담보된다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야말로 바로 경제민주주의 실현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주 이익의 극대화가 아닌 기업을 중심으로 한 모든 이해관계인의 적정한 이익을 도모함으로써 상호 상생을 추구하는 것이 향후 미래 경제질서의 좋은 모델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막연히 ‘연금사회주의’라고 일방적으로 폄하하기보다는 오히려 의결권 행사의 투명성 확보 등 제도적 장치를 통해 바람직한 ‘연금민주주의’로 나아가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만 국민연금이 지나치게 지분율을 많이 갖는 것은 제한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의결권 행사 강화를 계기로 국민연금이 새로운 경제질서 모델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국민연금이 방향 제시 등과 같은 좀더 적극적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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