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식 ‘차명거래 금지법’ 우려

입력 2013-10-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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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금융현실 고려 안한 법안 발의 잇따라

정치권에서 검은 돈의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차명거래 금지법’이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실제 금융거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식 법안 발의에 금융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주가조작, 역외탈세, 비자금 조성 등 차명거래를 이용한 비리가 잇따르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도 법 개정의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된 법안이 없다는 입장이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차명거래 금지법(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종걸·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에,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8월에 각각 법안을 발의했고 무소속 안철수 의원 역시 ‘제1호 법안’으로 차명거래 금지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993년 부터 시행되고 있는 금융실명제법은 금융기관과 거래시 본인 실명을 사용해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양자 합의에 따른 차명거래를 허용하면서 이를 악용한 금융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정·재계 인사들이 차명거래로 수천억원 대의 비자금을 운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차명거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졌다.

금융위원회는 차명거래의 문제점은 공감하지만 섣부른 법 개정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불법적 차명거래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지 차명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서민들의 불편만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비리 목적으로 행해진 차명거래에 대한 처벌 조항도 이미 있는 만큼 법 개정보다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차명거래를 금지할 경우 동호회 등 공동소유 계좌 및 자녀 통장마련 계좌 등 선의의 차명거래자가 불편을 겪을 것”이라며 “정작 차단해야 할 검은 돈의 경우 차명거래가 아닌, 돈을 빌려주는 형식으로 거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정작 근절해야 할 정·재계의 비자금 통로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 의원입법 대부분은 선의의 차명거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차명거래 인정 예외조항을 두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차명거래가‘금융위가 정하는 경우’인 예외조항에 해당되지 않으면 거래 당사자가 비리 목적이 없음을 소명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실제 거래에서 금융소비자가 차명거래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을 뿐 아니라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며 “차명거래 전면 금지는 금융거래자 모두를 비리 목적을 가진 잠재적 불법 거래자로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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