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용·허민·최향남, 메이저리거의 꿈… 아름다운 도전

입력 2013-09-1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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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루키 리그부터 시작 MLB 마운드 올라… 고양 원더스 구단주 허민, 美 독립리그에

▲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홈경기에서 7회초 마운드에 오른 임창용이 역투하고 있다. 역사적인 메이저리그 첫 등판에서 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AP/뉴시스

지난 5일 새벽(한국시간) 임창용(37ㆍ시카고 컵스)이 드디어 메이저리그로 승격했다. 메이저리그 엔트리가 9월부터 40인으로 확대되면서 마이너리그에서 뛰어난 피칭을 선보인 임창용은 꿈의 무대로 콜업될 수 있었다.

광주 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의 전신)에 입단한 지 18년 만에 삼성 라이온즈와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즈 그리고 마이너리그를 모두 거친 끝에 밟은 메이저리그 무대다.

고비도 있었다. 2005년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2006년 단 한 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했고 2007년에도 지지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한물갔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이미 만 30세를 넘긴 나이였고 그 나이대에 사라져간 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위기에서 그가 택한 것은 일본행이었다. 국내에서 ‘애니콜’‘창용불패’ 등으로 통했던 그는 쫓기듯 국내 무대를 떠났지만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거듭났다.

팔꿈치 수술 후유증에서 벗어난 그는 2011년까지 4시즌간 무려 128세이브를 올렸다. 전매특허인 ‘뱀직구’는 시속 160km에 달했다. 무실점 투구가 이어지면서 ‘미스터 제로’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호사다마였을까. 2012년 임창용은 또 한 번 불운을 겪었다. 팔꿈치 인대가 또 끊어졌고 더 이상 재기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임창용은 여기서 또 한 번 결단을 내렸다. 미국행을 택한 것. 조건도 좋지 않았다. 스플릿 계약(마이너리그에 있을 때와 메이저리그로 승격했을 때 조건이 다른 계약)이었다. 컵스로서는 재기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방출시키면 그만인 계약이었다.

임창용은 묵묵히 재활에 매진했고 마이너리그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인 루키리그부터 싱글A, 더블A, 트리플A 마운드를 차례로 밟았다. 트리플A에서는 11경기에서 11.1이닝 동안 단 1실점만 내줘 평균 자책점은 0.79에 불과했다. 탈삼진은 무려 12개였다.

올해 1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임창용은 “2014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히며 환하게 웃었다. “최대한 빨리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재활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였지만 조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1년도 채 되기 전에 꿈을 이뤘다.

임창용은 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홈경기에서 팀이 3-4로 뒤진 7회초 1사 상황에서 메이저리그 첫 마운드에 올라 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두 타자에게 볼넷과 안타를 허용했지만 세 번째 타자 진 세구라를 병살타로 유도하며 위기를 넘겼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임창용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지만 지난달 29일에는 임창용과 같은 1976년생 동갑내기 허민 고양 원더스 구단주가 화제가 됐다. 미국 독립리그인 캔암리그의 록랜드 볼더스에 정식 선수로 입단한 것.

서울대 출신의 성공한 IT 사업가 허민은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창단하고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에게 직접 너클볼을 사사받는 등 독특한 행보로 관심을 모았다.

주변에서는 부유한 사람의 독특한 취미생활 정도로 치부했지만 허 구단주의 야구 사랑에 사람들은 하나 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록랜드 입단 확정 후에는 “열정에 감동했습니다”, “허민 구단주뿐만 아니라 허민 투수도 응원합니다”, “잊고 살았던 꿈을 되찾는 계기가 됐습니다” 등과 같은 응원의 말이 쏟아지기도 했다.

허 구단주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반드시 결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고 “더 높은 무대를 위해 계속 도전할 것”이라는 포부를 나타냈다.

이들보다 앞서 더 큰 꿈을 위해 도전한 선수도 있다. 바로 최향남(42ㆍKIA)이다. 국내에서조차 12승이 시즌 최다승 기록이었지만 “단 한 번이라도 메이저리그 무대에 서고 싶다”는 도전정신 하나로 트라이아웃도 마다하지 않았다.

트리플 A까지 진출해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4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걸림돌이 돼 끝내 빅리그 무대를 밟진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실망보다 더 큰 목표 의식을 가졌다”며 오뚝이처럼 일어난 그의 도전정신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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