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한민국은 사바나 초원이다. 지구 온난화나 그에 따른 전력난 때문이 아니다. 부쩍 도심에 자주 출현하는 멧돼지처럼, 서울대공원에서 일제히 동물들이 탈출했기 때문도 아니다. 넘쳐나는 ‘초식남’ 때문이다. 연애나 결혼 따윈 관심 없는, 건조한 사회에 최적화된 신종 인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경향을 반영하듯 MBC의 ‘나 혼자 산다’가 인기다. 결핍으로 점철된 노총각 시청자에게 이 프로그램은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일단, 여자가 없다. 군대나 축구 따위가 아닌 이상, 혼자 사는 남자들만 우르르 나오는 현실을 납득하기란 쉽지 않다. 재미도 없다. 만들어진 일상은 부자연스럽다. 무엇보다 배려가 없다. ‘불금’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보고 자위하라는 것은 가혹하다.
공감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독한 외로움, 지저분한 집안, 지루한 식사 등은 혼자 산다면 ‘너는 내 운명’이다. 또 새로운 일상과 만남을 원하지만 결국 혼자 있을 때가 가장 편하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 하지만 방송은 방송일 뿐, 현실은 ‘무지개 저 넘어’에 있다. 대중적 인기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연예인들이 만들어내는 혼자의 삶은, 실제의 그것과는 다른 자발적 소외와 가상현실일 뿐이다.
남자가 혼자 사는 것은 양면적이다. 무엇보다, 경제력이 충분한 경우와 반대의 상황이 존재한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남녀는 평등하지만, 집은 남자가 해야지’라는 사회통합의 분위기에 쉽게 편입되지는 않는다. ‘나 혼자 산다’는 주체성의 이면에는 더 이상 부딪히지도, 상처받지도 않겠다는 거세된 자발성과 수동성이 깔려 있다.
‘초식남’ 현상은 그 본질을 증명하지 않는다. 단순히 연애나 결혼 거부의 문제가 아니다. 부족함을 용인 않는 남녀관계의 비대칭성과 자기욕망을 말한다. 혼자 사는 것이 ‘초식남’이라는 허울 아래 이성 배제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본질을 충만함이 아닌 결핍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사바나와 같은 도피처는 이 사회에 없다.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사랑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