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승자독식 시대, 아름다운 꼴찌라고?- 배국남 부국장 겸 문화부장

입력 2013-09-0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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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꼴찌” “의미 있는 꼴찌” “1등 가치에 버금가는 작은 이변의 꼴찌”… 대중매체의 극찬의 수식어들이 쏟아진다.

찬사의 대상은 1일 막을 내린 세계선수권 조정경기에 참가한 한국 여자 경량급 쿼드러플스컬(LW4x) 대표팀. 김명신(29), 김솔지(24), 박연희(21), 정혜원(19)으로 구성된 여자 경량급 쿼드러플스컬 팀이 지난 8월 30일 충주 탄금호 국제조정경기장에서 열린 2013 충주 세계조정선수권대회 파이널A에서 7분08초85로 결승선을 통과, 6개팀 중 6위 최하위다. 한국 조정 사상 최초 결선 진출이었지만 꼴찌를 기록한 것이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앞다퉈 한국여자대표 팀에 대한 칭찬의 행진을 이어갔다. 하지만 대중매체의 극찬은 1등과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과 결과만 좋으며 모두 좋다는 결과 지상주의가 횡행하는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대한 어설픈 자기 위로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꼴찌에 대한 찬사는 역설적으로 외면하고픈 승자·1등 독식주의, 결과 지상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냉혹한 우리의 현실을 적시하게 만든다.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에서 주고 되돌려 받는 ‘전유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through appropriations)’시대가 끝나고 주는 것도 없이 빼앗아 버리고 그래서 빚지게 하는‘탈취에 의한 축적(accumulation through dispossesion)’의 코드가 지배하는 무자비한 신자유주의 사회가 도래했다고 갈파했다. 2013년 한국사회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것도 1%의 부와 행복을 위해 99%의 빈곤과 비참을 강제하는 1 대 99의 사회 말이다.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마저 묵살하며 자본의 무한증식을 꾀하는 일부 재벌들, 조세의무를 비웃기라도 하듯 조세 피난처를 찾아 나서는 일부 상류층들, 편법·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자녀를 특정학교에 입학시키는 일부 특권층 사람들, 엄청난 출연료에도 브레이크 없는 몸값을 요구하는 일부 스타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군 면제를 꾀하는 일부 지도층과 그 자제들… 탈취에 의한 축적을 꾀하는 우리 사회 1%들이다.

그 1%의 이면에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생계 위협을 받는 수많은 서민들, 돈이 없어 연애, 결혼, 자식마저 포기 해야만 하는 3포세대의 젊은이들, 똑같은 아니 더 일하고도 신분이 불안하고 정규직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 등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들, 밤잠 설쳐가며 드라마나 영화의 완성을 위해 묵묵히 일했지만 인건비조차 체불되는 스태프들, 엄청난 등록금에 알바로 젊음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 학교를 떠나야 하는 대학생들의 절망과 탄식이 있다.

1%로 대변되는 승자의 독식이 가속화될수록 99%의 다수는 더욱 더 심각해지는 빈곤과 비참을 강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곳이 바로 2013년 한국 사회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갖고 1등만이 대우받고 결과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승자·1등 독식주의와 결과지상주의가 판치는 현실이기에 꼴찌는 삶의, 사회생활의 패배자의 등가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아름다운 꼴찌’라는 수식어는 공허한 찬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이 노력했어요”라고 말하는 김명신 선수의 검게 탄 얼굴 위로 흐르는 눈물이 진정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받기 위해선 1등과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승자 독식 사회의 폐단이,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결과 지상주의의 병폐가, 그리고 1 대 99의 양극화의 사회적 모순이 개선돼야 한다. 그래야만이 ‘아름다운 꼴찌’라는 수식어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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