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아베노믹스의 첫 번째 허들 - 이우광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연구위원

입력 2013-08-2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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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순항하던 아베노믹스가 출범 7개월 만에 첫 시험대에 올랐다. 2014년 4월부터 소비세를 5%에서 8%로 인상하기로 한 정책안에 대해 아베 총리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소비세를 인상하자니 겨우 살아나기 시작한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닐지, 또 연기하자니 재정건전성과 국제신인도 훼손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취임 이후 거침없이 질주하던 아베 총리도 결정을 9월 이후로 미루고 있어, 일본 정치의 고질병인 ‘결단하지 못하는 정치’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아베 총리가 결단하지 못하는 배경은 아베노믹스의 2번째 성적표인 2분기 실질 GDP성장률이 연율 2.6%로 소비세 인상을 결단하기에 애매하기 때문이다. 2.6%는 나쁜 수치는 아니다. 일본의 잠재성장력이 1%에도 못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성적표다.

문제는 1분기 3.8%보다 상당히 낮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시간이 지날수록 효력을 발휘한다면 1분기보다 높아져야 마땅하나 현실은 1분기보다 1%포인트 이상 낮은 것이다.

내용도 별로 좋지 않다. 주로 소비가 성장을 견인하고 있고, 아베노믹스가 중점을 두고 있는 설비투자 증가율은 여전히 마이너스다. 게다가 엔저 추세로 수출 증가율도 점점 더 좋아져야 하나 이것 또한 전분기 증가율보다 낮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개인소비가 주도하는 경기에 소비세 인상은 치명적이다.

아베 총리를 더욱 곤란하게 하는 것은 여당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아베노믹스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화제를 모았던 전 예일대 교수 하마다 고이치 내각관방참여는 “소비 증세는 일본경제에 큰 쇼크가 될 것”이라며 경기 회복이 확실해질 때까지 소비세 인상을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마다의 이론을 실천하여 지금까지 탄탄대로를 걸어온 아베노믹스이기에 그의 반대는 소비세 인상 결단을 어렵게 한다.

반면 아베 내각에서 경제 회생을 주도하고 있는 아마리 아키라 경제재생담당 장관은 “소비세를 인상하지 않을 선택지가 없다”라고 예정대로 실시할 것을 주장한다.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도 소비 증세가 “국제공약”이라며 예정대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일본이 소비세를 올리든 말든 일본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일본의 재정문제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일본의 금리와 엔환율 변화는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에 우리는 강 건너 불로만 볼 수 없는 입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8월 5일에 발표한 일본경제에 대한 평가보고서에서, 일본경제가 최근 회복 기미를 보이고는 있으나 중장기적으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소비세 증세가 ‘절대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IMF는 그러면서 2014년 GDP의 2.5배에 달하는 일본정부의 채무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향후 고령화로 인한 재정압박, 인플레이션 정책 추진 등으로 현재 0.8%정도의 장기금리가 2030년에는 5.5%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지금은 해외투자가들이 일본 주식을 주목하지만, 삐걱하면 일본주식을 외면할 가능성도 크다고 경고했다. 한마디로 IMF는 일본경제가 세계경제에 미치게 될 ‘재팬 리스크’를 우려하고 있다는 견해이다.

일본의 재정 불안은 금리 상승을 통한 엔저 리스크 증가를 의미한다. 지금도 엔저 때문에 자동차 등 우리 제품의 수출이 감소한다는 볼멘 목소리가 나오는 마당에, 일본의 재정 불안이 심화되어 엔저가 본격화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일본의 현명한 판단으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나아가 우리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환율이 아니라 품질이나 차별화된 제품으로 경쟁해야 한다는 교훈을 일본의 재정 불안을 통해 또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한다.

경제 현상은 실험을 해 볼 수가 없다. 또 정치와 달리 다수결로 정책을 결정할 문제도 아니다. 때로는 냉철한 진단을 내리는 소수의 의견에 따라야 할 때도 있다. 일본은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급격한 엔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업에게 유리한 저금리 정책을 펴야 한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른 결과, 갈 곳 없는 자금이 버블경제를 만들었고, 결국 버블이 터져 ‘잃어버린 20년’을 겪었다.

경제 정책에는 이데올로기가 가능한 한 배제되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최근 소득증세안을 둘러싼 국내의 갈등을 보면서 일본의 교훈을 다시 한번 떠 올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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