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 국어처럼 경제학 공부하기- 한성안 영산대 교수

입력 2013-07-08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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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들 중 하나다. 그 능력에 힘입어 인간은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 때문에 그루치(A. Gruchy)는 인간을 ‘문화적 존재’로 정의하기도 한다. 문화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상징과 문자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타인과 소통한다. 그 중 회화와 음악은 주관성이 너무 강해 소통과정에서 종종 오해가 유발되거나 불통을 야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는 문자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 회화나 음악에 비해 문자는 훨씬 객관적인 소통수단이다. 모차르트의 장엄한 레퀴엠을 감상할 때보다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읽음으로써 우리는 할머니의 사망사실을 한층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문자가 없었더라면 부산에 사는 나는 남해도에 살고 계신 할머니의 사망 사실도 모른 채 명절날 스마트폰을 선물하는 엉뚱한 불효를 저질렀을 것이다.

그런데 문자가 완전히 객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곧, 기호만으로 소통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같은 소리의 ‘포기’가 배추를 세고 있는 채소장수와 죽기살기로 달리고 있는 마라톤선수에게 다르게 들린다. 또, 외국인이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장으로부터 사망 사실을 바로 알기는 쉽지 않다. 그는 이 문장으로부터 할머니께서 부산에 머물다 남해도의 집으로 복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는 단지 기호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것은 ‘문법체계’이며 그 지역의 문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문화적 체계다. 따라서 한 단어와 문장은 전체 글의 맥락과 문화적 구조 속에서 객관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문법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맥락을 놓치며, 더 나아가 문자가 탄생된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이 불가능해지거나 완전히 딴소리를 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면 공동체가 유지될 수 없으므로 국가는 문맹 퇴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 그 때문에 어떤 교과과정에서도 국어가 제외되거나 두 번째 순위로 밀려나는 경우는 없다. 초등학교 때 우리는 ‘국·산·사·자·바·음·미’의 순서로 교과과목을 외웠고, 중고등학교 때도 국·영·수의 순서로 과목의 중요도를 매겼던 것이다. 매번 흘려듣곤 했지만 실력이 엄청 좋았던 우리 수학선생님은 국어를 잘해야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다. 그러니 학생들이 얼마나 국어를 열심히 했겠는가!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개별단어에 함몰되지 않고 그것을 전체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방법과 그 결과에 따라 전체의 요지와 주제를 이해하는 방법을 맹렬히 학습했다.

그런데 그렇게 국어를 중시하고 공부를 많이 시켰지만 국민들의 국어 실력은 그리 좋지 못하다. 스포츠신문이나 일반신문의 사회면 정도는 읽을 수 있지만, 경제면은 물론이고 문화면도 제대로 해석해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칼럼이나 사설을 앞에 두면 외국인이 한국신문을 읽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는 거의 20년 동안 ‘이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라’라는 훈련을 받았다. 그런데도 글을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다. 그리곤 자신에게 익숙하거나 좋아하는 단어만 솎아낸다. 맥락으로부터 잘려나간 단어들이 필자의 생각을 드러내 줄 리가 없다. 그러니 엉뚱한 오해와 짜증스런 왜곡만 창조될 뿐이다. 전체 요지는 물론이고 주제와도 동떨어진 답만 늘어놓는다. 시험점수로 치면 빵점이다. 그 점수는 문화적 존재로서의 자격에 미달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통상 이런 ‘비문화적 존재’에게 한 집단의 의사 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집단을 말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이런 비문화적 존재들이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고 있어 큰 문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새누리당의 김무성, 서상기, 정문헌 의원이 그런 사람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굴욕적인 자세로 NLL을 헌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국정원이 작성한 발췌본과 정상회담 원문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이들의 지독한 난독증에 말문이 막힌다. 시험으로 치면 빵점짜리 답안지와 같고 병으로 치면 중증이다. 이런 ‘비문화적 존재’들이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라를 말아먹지는 않을까 두렵다. 나는 경제학을 국어처럼 가르친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능력만 갖추면 그 복잡한 그래프와 수식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느리고 미욱해 보이는 방법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지름길이며, 그 효과는 참으로 크다. 이 비문화적 존재들에게 다음 학기 나의 강의에 등록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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