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일부러 원정 출산도 가는데, 너에게 주어진 권리를 왜 포기하느냐고 말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갖고 한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큰 영향력으로 너를 낳아준 한국을 위해 일하는 멋진 사람이 되라고 격려하였다. 아울러 기회가 되면 군 복무를 하여 군대를 면제 받기 위해 미국 국적을 취득한 비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라고 말해줬다.
그러던 어느날 제자가 국군 수도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믿지 못할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나는 곧 바로 조퇴를 하여 국군 통합병원을 한달음에 달려갔다. 먼저 소식을 듣고 찾아온 제자들이 나를 보자 부둥켜 안고 엉엉 우는 게 아닌가?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가 왜 병원에 누워 있느냐고 아이의 어머니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튀어 나왔다. “선생님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입대했다가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원망하며 울기만 하였다.
잠시 뒤 어렵게 중환자실에 들어가 이 아이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던 아이가 2년 만에 죽음을 기다리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끊어질 듯 가늘게 이어지는 제자의 얕은 숨소리. 몇 시간이 지났을까 그렇게 이 아이는 조국의 품에 영원히 안기게 되었다.
나의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는 바로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제자의 묘역 묘비 번호다. 올해도 이 번호를 들고 제자들과 함께 대전현충원을 찾아간다. ‘사병 2-32-18186’‘멋진 청년 백귀보’ 나라와 민족 앞에 떳떳하기 위해 살았던 짧은 너의 삶을 선생님은 영원히 추억하며 기념할 것이다. 귀보야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