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ㆍ삽화 방민준(골프칼럼니스트)
영국의 골프평론가 버나드 다윈(Bernard Darwin)은 진화론으로 유명한 찰스 다윈의 손자다. 케임브리지를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골프에 매료되어 아예 직업을 골프평론가로 바꿔 주옥 같은 골프에세이를 남겼다. 그는 “골프만큼 플레이어의 성격이 잘 나타나는 게임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최선과 최악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명언을 남겼다.
수십년간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EO를 지낸 잭 웰치에겐 ‘경영의 신(神)’이란 별명이 따라다닌다. 골프를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던 웰치는 골프를 통해 GE의 CEO로 발탁되었고, 그의 후계자 역시 골프를 통해 선정했다. GE에는 PGA 최고 대회인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내셔널 골프코스에서 매년 전·현직 임원들이 모여 대회를 벌이는 전통이 있다. 본래 취지는 친목 도모와 팀워크 구축이었지만 젊은 임원들의 자질을 관찰하는 데 더 큰 몫을 했다. GE의 골프모임은 프란시스 메이트나 버나드 다윈이 간파한 골프의 속성을 활용한 기막힌 인재 검증무대가 된 것이다. GE의 리더급 임원들이 젊은 임원들의 인격과 리더십 등을 다면 평가하는 데 골프만한 것이 없다는 신념을 갖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 젊은 임원들과의 라운드에서 도대체 무엇을 본단 말인가.
우선 전략적 사고를 본다. 자신의 장단점, 기회와 위기를 얼마나 정확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리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플레이하는지를 관찰한다.
둘째 도덕성. 스코어를 정확하게 기록하는지, 남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룰을 철저하게 지키는지, 타인에게 불쾌감을 안 주는지 등을 본다.
셋째 커뮤니케이션 능력. 동반자와 어울려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라운드 하는지를 관찰한다. 지적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다양한 인간관계를 얼마나 슬기롭게 유지해 나가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넷째 균형감각. 미스 샷을 했을 때 화를 내고 변명으로 일관하는지, 실수 후 당황에 빠져 더 큰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는지, 위험에 직면했을 때 무모하게 덤벼드는지, 냉정하게 돌아가는 지혜가 있는지 등을 살핀다. 그리고 파트너가 멋진 샷을 날렸을 때 진정으로 축하해주는지 등을 살핀다.
다섯째로 보는 것이 리더십으로 도전정신, 책임감, 결단력, 그리고 캐디나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언사와 복장, 테이블 매너 등 포괄적인 품위를 본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이만한 척도를 골프 말고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겠는가. 운동 삼아, 재미 삼아 골프장을 찾는 보통 주말골퍼들로서 동반자 중 누군가가 이런 척도를 가지고 자신을 관찰한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들 것이다. 겉으로는 허심탄회하게 웃으며 대하지만 기업하는 골퍼들은 나름대로의 골프를 통한 인간 판단법을 익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