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디마케팅’… 뒤바뀐 ‘갑을 관계’

입력 2013-04-2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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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할 곳 없어” 고금리 뭉칫돈 예금 거절… 우량기업 대출 때는 경쟁

# 최근 한 대기업 간부는 방어적 경영으로 투자가 지연되면서 발생한 거액의 여유자금을 주거래은행에 맡기려다 곤욕을 치렀다. 원화 자금이 넘쳐나 이익이 남을지 계산기 먼저 두드린 주거래은행으로부터 예금 받기가 곤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이 간부는 한곳에 예금을 모두 맡기지 못하고 몇 군데 은행에 분산 예치했다.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뭉칫돈 예금은 사양하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기업고객본부 부행장의 말이다. 은행들이 몰려드는 뭉칫돈에 손사래 치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예금을 받아 대출로 운용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데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2009년 금융위기 사태 여파로 돈줄이 막혀 활발한 예금 유치 노력을 펼쳤던 시기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리스크 관리경영이 화두가 되면서 은행의 디마케팅(De-Marketing)이 현실화되고 있다.

일선 영업현장에선 기업들이 거액 예금유치를 빌미로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은행들은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금리를 깎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 전달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실 은행권은 저금리 기조가 깊어지면서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금을 굴리 곳이 마땅치 않은 일부 2금융권 금융회사들은 페이퍼 컴퍼니를 만들어 은행권에 자금을 떠넘기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시중은행의 대표적인 기관영업 대상이었던 금융공기업의 기금 예치도 골칫거리다. 금융공기업은 은행에 운용 중인 기금을 예치하려다 거절당하기 일쑤다. 설사 유치된다 하더라도 당초 설정한 목표수익률에 훨씬 못 미치는 금리를 감내해야 한다.

상황이 이쯤되자 은행 수신부문에선 고객인 기업·기관과 은행간의 ‘갑을(甲乙)관계’가 뒤바뀌고 있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반대로 대출시장에선 주채권은행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 기준금리가 내린데다 우량기업 유치 경쟁으로 제로 마진에 역마진 위험까지 감수하며 고객 잡기에 나선 상태다. 은행이 돈줄을 틀어쥐고 기업 위에 군림하는 시대는 끝났다.

시중은행 기업고객 담당 부행장은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되면서 가장 먼저 은행권의 시장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며“저금리·저성장에 따른 금융권의 수익이 급감하고 있는 만큼 금융당국의 금융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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