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깝지만 유동성 확보가 우선”…사옥 팔고 임대전환 현상까지
건설경기 장기 침체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일부 업체들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의 핵심 자산을 매물로 꺼내들었다. 또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탄탄한 업체들조차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유동성 위기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빌딩자산 매각에 박차를 가하는 모습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부토건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매각을 추진 중이다. 삼부토건은 현재 삼일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해 매각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관심을 보이는 투자자들과 매각가격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부토건은 지난 2월 우리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400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르네상스호텔을 오는 5월 31일까지 매각하겠다는 약정을 맺었다. 따라서 5월까지 매각을 완료하지 않으면 호텔의 매각권은 채권단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호텔의 감정평가액은 8736억원으로, 부동산 경기 불황을 감안할 경우 8000억~9000원대에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제공한 신용공여 1600억원의 우발채무를 조기 해소하기 위해 연말로 예정됐던 ‘화성 동탄 메타폴리스몰’ 매각 일정을 오는 7월 말로 앞당겼다. 메타폴리스의 최대주주는 포스코건설(40.1%)이며, 한국토지공사(19.9%), 팬퍼시픽(26%), 신동아건설(12%) 등도 지분을 갖고 있다. 포스코건설은 또 지난달 자사 소유의 서초구 양재동 강남P타워를 코람코자산신탁에 매각하기도 했다. 빌딩 매각가격은 2600억원이며, 현재 파리바게트·삼립식품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SPC그룹이 임차해 사옥으로 사용 중이다.
대우건설도 최근 강남구 도곡동 오피스 빌딩을 LG전자에 매각했다. 거래금액은 2260억원으로 알려졌다. 당초 대우건설은 이 빌딩 부지에 최고급 오피스텔을 지어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판단해 업무시설로 사업 계획을 변경한 바 있다. 대우건설은 매각대금을 재무적 투자자의 빚을 갚는데 쓰고, 나머지는 직접 투자비로 환수했다. 그러나 그동안 투입된 금융비용 등을 감안하면 일부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사옥을 매각하고, 임대로 갈아타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GS건설은 지난달 본사 사옥으로 사용 중인 중구 남대문로5가 GS역전타워를 베스타스자산운용에 매각해 1700억원을 확보했고, 같은 달 두산건설의 강남구 논현동 사옥도 1440억원에 하나다올자산운용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다.
올 초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졸업한 삼환기업은 자회사인 삼환까뮤의 여의도 사옥 매각을 추진 중이며, 최근에는 종로구 운니동에 소재한 본사도 매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오죽 어려우면 사옥까지 팔겠나. 이를 계기로 자금 확보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긴 하겠지만 회사의 자존심에는 큰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빌딩 보유가치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건설사의 빌딩 매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길게 가지고 있어봐야 득될 게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서울지역 오피스빌딩 시장은 과잉공급의 여파로 공실이 넘쳐나면서 수익률·임대료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빌딩업계 관계자는 “서울 중심지의 빌딩시장은 불황에도 끄떡 없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며 “그나마 임대수요가 탄탄한 우량 건물 위주로 외국계 자본 및 기관투자자 등의 매입이 이어지고 있지만, 입지가 떨어지는 일부 빌딩은 골칫덩이로 전락한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