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JTBC 올 WBC 특수 노렸지만 물거품… SBS 피겨 김연아 우승으로 윈윈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역이나 버스터미널, 공항 등에 설치된 TV화면 앞에 모여 큰 소리로 환호하던 시기가 있었다. 1990년대 중후반 박찬호(당시 LA다저스)가 등판하는 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에 내장된 DMB 혹은 TV다시보기 등이 일반화된 요즘, 이제는 추억이 된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당시 박찬호가 등판하는 날은 박찬호의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각 방송사 스포츠 뉴스는 물론 메인 뉴스에서도 그의 경기 결과를 주요 기사로 보도했고, 다음날 신문 가판대는 박찬호의 얼굴 일색이었다.
박찬호가 미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며 주목을 끈 것은 단지 다저스와 메이저리그만이 아니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간 박찬호의 경기를 독점 생중계했던 iTV(경인방송)는 지역 민영방송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일약 전국민의 채널로 자리잡았다. 지역방송이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박찬호 출전 경기를 시청하기 위한 다른 지역의 엄청난 요구로 불법 재송신이나 케이블TV를 통한 편법 송출까지 등장했다.
1998년 당시 박찬호의 선발등판 경기는 가시청률이 54.8%(갤럽 마케팅 리서치)에 달했다. 중계권료는 1998년 100만 달러(약 11억1700만원), 1999년 150만 달러(약 16억7500만원), 2000년 300만 달러(약 33억5000만원)로 해마다 늘었다. 이는 1996년부터 2년간 KBS가 연간 30만 달러(약 3억3500만원)의 헐값(?)에 중계권을 사들인 것이 비해 대폭 인상된 금액이었다. 하지만 2001년부터 4년간 독점중계권을 딴 MBC는 총액 약 2000만 달러(약 223억3600만원)에 계약을 해 5~6년 사이에 중계권료는 꾸준히 인상됐다. 물론 iTV는 2004년 말을 끝으로 TV방송이 막을 내렸지만 박찬호 경기 중계를 통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인 매체 인지도를 순식간에 끌어올렸다.
최근 막을 내린 제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전 국민의 주목을 받은 스포츠 이벤트였다. 이 방송의 독점중계권을 가진 방송사는 종합편성채널인 JTBC였다. JTBC는 지상파 3사의 합의체인 ‘코리아풀’을 따돌리고 WBC 전 경기 중계권을 확보했다. 정확한 중계권료는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는 약 650만~700만 달러(약 72억5900~78억1800만원)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JTBC의 바람과 달리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그에 따라 WBC 붐 조성도 실패했다. 2라운드와 4강 등의 성적을 올렸다면 고액의 광고 수입이 보장될 수 있었지만 결과는 조기 탈락이었다.
물론 종편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2일 네덜란드전(6.971%), 4일 호주전(6.701%), 5일 대만전(6.945%, 이상 닐슨코리아 제공) 등은 종편채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JTBC 측은 “이미 2라운드까지의 광고가 모두 판매돼 금전적인 손해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매체의 인지도 상승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게 업계의 평이다. 또한 광고 단가가 높은 준결승 이후에 한국이 없었다는 점도 악재였다.
WBC가 열리는 기간에 또 하나의 국민적인 관심사가 있었다. 바로 김연아였다. 김연아는 11일에서 18일까지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우승했다. 독점중계권을 가진 SBS는 김연아의 우승으로 이른바 윈-윈에 성공했다. 17일 김연아의 프리스케이팅 연기 당시 시청률은 17.4%에 달했다. SBS는 김연아의 주니어 시절부터 국제빙상연맹(ISU)으로부터 장기간 독점중계권을 확보해두고 있어 거액의 중계권료 낭비라는 비난도 피할 수 있었다.
스포츠 이벤트의 중계권 문제는 종종 방송사들 간의 과열 경쟁으로 외화 낭비라는 비판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큰 이벤트에서 방송사들 간 ‘코리아풀’을 구성해 협상에 나서지만 풀을 깨는 방송사들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때마다 과도한 중계권료 지불로 인한 외화 낭비가 도마에 오르곤 한다. 하지만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른바 풀을 깨면서까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모험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