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있는 데도 이 권한을 미래창조과학부에 이관하는 것은 방송관련정책을 2개 부처가 나눠 갖는 데다 정부가 방송을 장악해 여론을 조작하려는 의도라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방송을 장악할 의도도 없고, 방법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은 새 정부 정책방향의 골간이어서 원안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실제로 야당의 주장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보도 기능이 없는 업역의 권한은 산업적 측면에서 해석하면 된다. 그런데도 미디어정책이라고 내세우며 달려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에 대한 청와대와 여당의 대응은 전략도 없고, 미숙하기 짝이 없다.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섰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 대화로 풀자고 제안했지만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없었다. 대화제의가 실패하자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지만, 이는 정치를 포기한 것과 같다.
민주당의 주장 처럼 일정에 대한 협의와 합의가 없이 청와대 측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면 손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손님을 집에 초청하려면 오겠다는 승낙을 받아야 하고, 시간도 상의하는 게 맞다. 민주당의 얘기처럼 대통령이 오라고 하면, 반드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민주당이 거부했다고 책임을 전가했다. 앞으로도 대화 채널은 계속 열어놓겠다며 대화와 소통을 얘기했다.
대화할 의사가 있다면 대화를 통한 타협이나 양보할 의지도 보여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정부 조직법 개편안은 양보할 수 없다면서 청와대에서 만나 얘기하자는 것은 대화가 아니고 압박일 뿐이다. 고양이가 쥐를 몰 때도 도망갈 구멍을 열어놓고 몰지 않는가.
정치역학적으로도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접근 방식은 잘못됐다.
지금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구심점이 없는 데다 대여 투쟁의 쟁점이 없어 지리멸렬한 상태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이 야권의 재결집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초반 기존 질서를 재편하려는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가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우를 범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실책에 힘을 얻은 보수세혁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하려다가 다시 역풍을 맞았다.
정치는 그런 것이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야권 결집을 도와주고 있다.
정치는 타협이 생명이다.
로마시대 공화정에서 군주정으로 회귀한 카이사르의 타협은 요즘 정치판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로마의 중요한 관직을 차례로 거친 카이사르에게는 집정관이 남았다. 야심이 큰 카이사르는 민회 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 당시 로마시민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폼페이우스와 비밀협정을 맺었다. 폼페이우스가 자신의 집정권 선출을 도와준다면 폼페이우스의 부하들에게 농지를 분배하고 폼페이우스가 조직한 오리엔트 재편성안을 도와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폼페이우스는 이미 집정관을 지낸 데다 로마 시민들로부터 영웅적 대접을 받고 있던 터였다.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와 연합하는 한편 당대 최고의 부자이며 폼페이우스와 앙숙 관계인 크라수스와도 연합했다. 폼페이우스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로마시대 삼두정치의 시작이다. 카이사르는 이같은 절묘한 균형과 견제를 통해 권력을 잡을 수 있었고, 이 구도를 통해 절대권력으로 비견됐던 원로원 개혁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도 들어줘야 한다.
오얏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아무리 방송을 장악할 의도가 없다지만, 이미 야당이나 재야 세력들은 새정부 투쟁거리를 찾았다.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며 밝힌 140개 국정과제는 내팽개친 채 미래창조과학부 업무 중 지극히 작은 방송허가권에 집착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