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 삼성가와의 인연, 영남 명문가, 재벌혼맥 허브. 금호아시아나그룹 혼맥과 관련한 다채로운 수식어들이다. 외국인을 맏며느리로 들인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하던 시절 파란눈의 며느리가 들어온 것도,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의 외동아들이 금호가(家) 사위가 된 것도 재계에선 핫 이슈였다.
또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 고(故) 박인천 그룹 창업주의 정성은 국내 굴지의 상당수 재벌그룹들과 화려한 혼맥을 이어가는 원동력이었다. 금호아시아나 가(家)는 LG그룹, 삼성그룹, 대상그룹, 동국제강그룹을 비롯해 한 단계 거슬러 올라가면 대우그룹, 일진그룹, 두산그룹 등과도 연결고리가 맺어진다.
◇박인천 창업주… 2세 혼사 앞장서 = 46세의 나이에 미제 택시 2대로 시작해 지금의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탄생시킨 박인천 창업주. 아호(雅號)가 ‘금호’인 그는 금호그룹을 세우기까지 사실상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시행착오와 아픈 경험들은 결국 재벌그룹으로 성장하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됐고, 그 과정 속에서 전남 영광 출신의 이순정 여사를 만났다.
두 사람은 슬하에 5남 3녀를 뒀다. 박 창업주는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하며 배운 추진력과 적극성을 자식들의 혼사에도 적용했다. 직접 뛰어다니며 혼사를 결정할 정도로 정성을 들인 결과 금호그룹의 2세 혼맥은 국내 굴지의 그룹들과 사돈을 맺는 등 재벌가 혼맥답게 화려하다.
하지만 박 창업주 장남인 고(故) 박성용 명예회장은 예외다. 그 시절 상상도 못했던 국제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마거릿 클라크(82)와 만나 아버지의 허락을 받지 못한 채 결혼식을 올렸다. 이들 부부의 결혼은 평범했지만 자식들을 통해 역시 화려한 재벌가 혼맥을 이어갔다. 슬하의 1남 1녀 중 아들인 재영(44)씨는 구자훈(67) LIG손해보험 회장의 3녀인 문정(39)씨와 결혼했으며 1남을 두고 있다. 구자훈 회장은 고(故) 구인회 회장의 첫째동생인 고(故) 구철회 회장의 3남이다. 문정씨의 고모부는 고(故) 박용훈 전 두산건설 부회장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 혼맥은 두산그룹까지 이어진다.
박 창업주 장녀인 경애(80)씨는 제헌의원 출신 배태성씨의 장남이자 삼화고속 회장인 영환(81)씨와 결혼했다. 경애씨에 이어 2남인 고(故) 박정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역시 정계와의 혼맥을 이어갔다. 그는 경북 안동에서 다섯 차례 당선된 김익기 전 국회의원의 딸인 형일(68)씨와 혼인했다.
현재 금호미술관장을 맡고 있는 박 창업주의 차녀 강자(73)씨는 대한전자재료 회장인 강대균(73)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들은 재원(34)·지원·지영씨 등 1남 2녀를 슬하에 뒀다.
현재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이끌고 있는 3남 박삼구(69) 회장은 재무부 장관, 산업은행 총재를 역임했고 한때 금호석유화학 회장을 지낸 고(故) 이정환씨의 차녀인 경렬(64)씨와 결혼했다. 4남이자 금호석유화학 회장인 박찬구(66)씨는 위창남 전 경남투자금융 사장의 차녀인 진영(61)씨와 결혼했다.
박 창업주의 막내딸인 박현주(61)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은 임창욱(65) 대상그룹 회장과의 결혼으로 재계의 화제 속 주인공이 됐다. 전남과 전북의 대표 재벌이 한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결혼 이후 대상그룹의 경영에도 참여하며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금녀(禁女) 경영’ 전통을 깼다.
한편 박 창업주의 막내아들인 박종구(56)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이명선 전 삼흥복장 사장 장녀인 계옥(56)씨와 결혼했다.
◇3세 혼맥, 2세보다 더 화려해 = 금호아시아나그룹 혼맥은 3세로 넘어오며 절정을 이룬다. 특히 3녀 현주씨의 큰딸 임세령(37)씨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과 결혼하며 온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이 두사람의 결혼은 호남가 금호와 영남가 삼성과의 만남, 조미료 전쟁의 중심에 있던 대상과 삼성과의 만남이 동시에 이뤄진 것으로 평가되며 재벌혼맥의 묘미를 더했다. 하지만 지대한 관심을 모았던 이 두사람은 결혼 10여년 만에 합의 이혼했다. 현주씨의 차녀인 임상민(34)씨는 미혼이며 최근 대상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으로 임명되는 등 경영일선에서 활발하게 뛰고 있다.
2남 박정구 회장의 장녀 은형(44)씨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남인 선협(45)씨와 결혼해 대우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장녀를 비롯한 나머지 2명의 딸들의 혼맥 역시 재벌그룹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차녀인 은경(42)씨는 동국제강 고(故) 장상태 회장의 손자인 장세홍(48) 한국철강 대표와 혼인했다. 3녀 은혜(38)씨는 허진규 일진그룹 회장의 차남 허재명(42) 일진머티리얼즈 대표와 결혼했다. 외아들이자 금호석유화학 상무인 철완(36)씨는 미혼이다.
3남 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39)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사촌들과 달리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김현정(38)씨와 결혼했다. 장녀인 세진(36)씨는 최성욱(38) 변호사(김앤장법률사무소)와 혼인했다.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박준경(36) 금호석유화학 상무보와 박주형(34)씨를 자녀로 두고 있으며 두 사람 모두 미혼이다.
한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재계에서는 보기 드문 ‘형제경영’으로 유명했다. 박 창업주가 후계구도 원칙을 ‘형제경영’으로 세우며 4형제 경영승계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984년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은 65세인 1996년에 동생 정구씨에게 경영권을 물려줬다. 박정구 회장도 2002년 폐암으로 세상을 뜨며 삼구씨에게 회장직을 넘겼다. 그때 나이 역시 65세였다. 이때부터 65세 규칙이 생겨났다.
하지만 3남부터 이 룰은 깨졌다. 삼구씨가 65세가 되던 2009년 공교롭게도 ‘형제의 난’이 터지며 승계보다는 계열 분리의 길을 걷게 됐다. 결국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그룹과 한지붕 아래에 있던 금호석유화학은 서울 중구 수표동으로 사옥을 이전하며 금호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