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발전을 이야기할 때 부총리제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개발연대의 부총리는 경제기획과 예산 등 경제는 물론 국정전반에 걸쳐 종합조정자 역할을 수행했다. 경제기획원 차관은 경제차관회의 뿐만 아니라 국무회의의 전단계인 차관회의의 의장이었고 부총리는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며 경제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결정했다. 당시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던 녹실은 경제정책조정의 산실이었다.
1984년 파키스탄의 지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하기에 앞서 본인의 방한 중에 한국경제발전의 산실인 경제기획원을 직접 방문하여 한국경제발전에 관한 설명을 듣고 간부들과 토론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여 경제기획원 역사상 처음으로 외국의 국가수반을 청사에 모시고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이처럼 당시 파키스탄을 비롯하여 말레이시아 태국 등 여러 개발도상국들은 한국을 경제발전모델로 삼고자 하였으며 특히 경제기획원의 역할과 기능에 주목하였다. 사실 기획과 예산기능을 한 부처에 두고 연계시킨 점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우리 만의 독특한 조직으로서 그 효용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민정부 이후 경제부총리는 개발연대 부총리의 역할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하여 탄생시켰던 재정경제원은 외환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여 소위 IMF 지원사태를 초래하고 말았으니 개발연대 당시 수많은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만일 경제기획원과 부총리제가 그대로 존속되었다면 외환위기는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나 혼자 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새 정부가 경제부총리제를 다시 부활하기로 한데 대해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러 부처에 걸친 경제현안을 종합조정할 콘트롤타워로서의 역할은 분명히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번 정부에서는 그 역할을 하는 곳이 없었다. 총리실과 청와대가 그 역할을 하기에는 조직의 성격상 맞지도 않고 역부족이었다. 새 정부의 경제부총리제 부활 방침을 보고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성공을 기대하면서 세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경제부총리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조직이 바뀌고 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조직과 인력은 그대로 두고 장관에게 부총리의 감투 만을 얹어준다고 부총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개발연대의 부총리는 당시 경제기획원 내에 경제기획국, 예산실, 정책조정국, 경제협력국, 심사평가국 등을 두고 각 국실이 전 부처의 업무를 커버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현안문제가 생기더라도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조직과 전문인력의 보좌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민정부 이후 여러 차례 조직이 바뀌었고 이번 정부에서는 경제부총리제가 소멸되어 그러한 인력이 양성될 기회가 없어졌으니 경제부총리제의 부활 만으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지금의 경제문제는 개발연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개발연대에는 정부가 경제개발계획을 주도하고 민간부분이 미약하였지만 지금의 경제문제는 개발연대에 비해 훨씬 복잡다양하고 또 민간부분의 역할이 커진 만큼 정부의 역할조정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제부총리가 경제현안을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민간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충분한 논의없이 부총리의 권한이나 힘으로 결론을 내려고 해서는 안된다. 경제문제는 경제논리로 풀어야지 힘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경제부총리의 인선문제다. 경제부총리라는 자리는 수많은 경제현안을 시시각각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연습하면서 할 수는 없다. 따라서 경제부총리는 오랜 행정경험과 경제전반에 걸쳐 탁월한 식견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문민정부 이후 우리의 정부조직과 인사시스템이 더 이상 경제부총리 감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