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여풍 부나] 꼼꼼·유연함… 남자 제치고 별을 달다

입력 2013-01-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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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중심의 금융권에선 여성임원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소문난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주로 남성들이 주요 업무를 맡고 여성은 한직을 도는 업무 풍토 때문에 여성이 1급으로 승진한 것은 금융권의 인사 관행상 선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유연함이 강점으로 부각되면서 금융권에도 여성 인력의 양적 증가와 함께 여성의 활동 무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 신입사원 시절 조그만 실수에도 주눅들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던 실력파 금융권 여성 임원들의 성공비결은 뭘까. 베테랑 여성 금융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은행권, 여성임원 1세대 유리천장 깨다= 은행권에 공채로 입사해 조직에서 별을 다는 여성임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이들은 여성임원 1세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은행권 여성임원 중에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 있다. 박정림 KB국민은행 WM 본부장이다. 박 본부장은 지난 1994년 금융권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주요 부서를 거치며 실력을 갈고 닦아 한국인 최초로 세계 리스크관리전문가협회 임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또 기획재정부 기금정책심의회 위원, 국민연금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며 명실공히 대표적으로 주목받는 여성 금융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자신의 소신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이 성공의 비결로 꼽은 것은 바로 전문성과 함께 네트워킹 능력이다. 박 본부장은 한번 알게 된 사람과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부분이 지금 자리까지 오를 수 있는 네트워킹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

기업은행 창립 50년만에 탄생한 첫 여성 부행장 자리에 오른 권선중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입행 36년차인 그는 20년전 카드담당 대리에서 지점장, 센터장, 본부장을 거쳐 부행장 자리에 올랐다. 공채 출신의 여성이 부행장에 오른 경우는 전체 은행권에서 유일하다.

영문학을 전공한 권 부행장이 1978년 입행 당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숫자’였다. 주판을 두드려서 일일이 계산해야 하는 창구업무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금처럼 전자계산이 당연시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주판알 튕기는 동안 그는 한계를 뛰어넘는 준비된 금융인으로 발전되는 계기가 됐다.

씨티은행의 경우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빨리 여성 임원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전체 부행장 13명 중 3명이 여성이다. 이 중 1978년 씨티은행에 입사해 서울은행 부행장을 거쳐 2007년 부행장 자리에 오른 김명옥 업무지원본부 부행장은 한국씨티은행 제1대 여성위원회 회장이다. 그는 여성들은 책임자급에 올라도 워낙 소수이기 때문에 조직에서 소외되기 쉬워, 소속감과 자부심을 갖고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남성 못지 않게 영업통으로 불리는 여성 임원도 있다. 이남희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류학과를 나와 은행에 들어온 이력이 새롭다. 수출입무역금융이나 머니마켓 딜러부터 도서실 사서까지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그는 딜링룸에 있을 때 머니마켓과 코퍼레이트 딜러를 맡기도 해 금융시장 실무에 대한 이해도 남다르다는 평이다.

◇설계사 출신에서 ‘별’을 따기까지= 보험업계에 설계사 출신으로 임원까지 오른 여성 주인공들이 눈에 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보험업계에도 여풍(女風)이 거세게 몰아칠 분위기다.

신한생명은 올 초 정기인사에서 설계사 출신 여성인력 두 명을 핵심지역의 본부장으로 발탁했다. 수도본부장으로 발탁된 김점옥 본부장은 2003년 지점장 승진 이후 2011년 신한생명 최초의 여성 임원으로 호남지역 영업총괄 본부장에 올랐다.

고졸 설계사 출신인 그는 호남지역 설계사 조직규모와 영업실적에서 신장률 30% 이상, 지역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등 탁월한 성과를 거뒀다. 이에 최대 전략 요충지인 서울과 수도권을 커버하는 수도본부를 담당하게 됐다.

김 본부장은 1994년 신한생명 재무설계사(FC)로 보험영업을 시작해 1995년 영업소장, 2003년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또 다른 설계사 출신 김민자 본부장은 본사 제휴TM본부장으로 선임됐다. 김 본부장은 지난해 고객중심경영과 CS제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성과를 거둬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민원평가에서도 생보업계 최고등급을 인정받기도 했다.

한편 보험업계는 금융권에서 드물게 여성 최고경영자도 있다.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손 대표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강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1996년 푸르덴셜생명 인사부 부장으로 입사한 후 1998년 상무선임, 2001년 전무, 2003년 부사장을 거친 후 지난 2011년 보험업계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CEO가 됐다. 특유의 감성경영으로 주목받고 있다.

손 대표는 성공한 여성임원으로서 “남자들이 100을 하면 120을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 왔다”고 회고한다. 현실적으로 첫 아이를 낳을 때와 둘째 아이를 낳을 때 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가 직장여성들에게 위기의 순간을 맞는다며 매순간 남다른 각오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는 1974년 2월 체이스맨해튼 은행에서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출산과 유학으로 인한 공백기 3년을 뺀 나머지 35년을 금융권에 몸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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