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생활이 곧 봉사인 백만기씨
“어느 날 돌아보니 제 나이가 40이더라고요. 세월이 참 빠르다고 느꼈습니다. 문득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직장 생활은 딱 50까지만 하고 다른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죠.”
인문학, 철학책을 두루 섭렵하며 먼저 인생을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을 추적했다. 그러면서 인생 후반기 계획을 조금씩 완성해나갔다.
백씨는 “막상 50세가 실행으로 옮기기가 어렵더군요. 딸아이 셋 다 결혼도 시켜야 하고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는 녀석도 있었어요. 3년이란 세월이 더 흘러서야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백씨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정작 하고 싶은 일들은 뒷전으로 미뤄왔다. 그래서 40대부터 틈틈이 평소 좋아했던 분야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미술전시회를 열심히 찾아다녔고 커피나 와인, 건축, 악기를 배우기도 했다. 개인교습을 받고, 학교를 다시 다니고, 관련기관을 찾아다녔다.
“은퇴 후 뭘 할 것인지를 연구하다보니 새롭게 익혀야 할 것들의 목록이 나오더군요. 그 목록에 따라 성실하게 움직였고 배운 것들을 백분 활용했습니다. 은퇴를 하고나서 공연과 전시, 커피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대안문화공간을 운영하기도 했어요.”
백씨는 친구들과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하우스콘서트를 갖고 종종 위문공연도 다닌다. 그는 팀에서 콘트라베이스와 드럼을 맡고 있다.
백씨가 사는 분당에만 무려 3000개의 문화예술동호회가 있다. 이 중 괜찮은 동호회들이 모여 6년 전 ‘사랑방 문화클럽’이란 연합회를 결성했다. 그때 초대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회원들이 연주를 하고 전시도 열 수 있는 공간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분당FM방송에서 ‘동호인 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 분당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초청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이었다. 좋은 책들을 소개하는 ‘책 읽는 주말’도 2년 동안 진행했다. 백씨는 현재 집근처에 있는 점자도서관에서 도서 녹음봉사도 하고 있다. 책을 낭독한 다음 MP3 파일이나 테이프로 만들면 그곳에 등록돼 있는 5000여 명의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다.
백씨는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 합니다. 직장에서 나오면 그동안 맺었던 인간관계가 희미해지고 어떤 때는 단절이 되기도 합니다. 이때 취미가 있는 사람들은 동호회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맥을 쌓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은퇴 전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취미와 봉사가 만난 나눔의 삶을 실천하고 있는 백만기 씨.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나의 도반(함께 도를 닦는 벗)”이라는 그가 만들어나갈 지역 문화네트워크가 점점 더 많은 도반들에게 닿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