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잃은 신용평가사] 신용등급 책정 불편한 진실은?

입력 2012-10-1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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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병폐 기업 의존 수익구조… 현실에 맞지 않는 평가시스템 베끼기 등

신용평가사의 부실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뒷북 조정에 대해 불신과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극동건설에 이어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하자 웅진그룹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조정했다. 이 역시 신용평가사들의 사전 알람(alarm) 기능을 상실한 뒷북 조정이다.

그간 신평사들은 부도 위기에 처한 그 어떤 기업도 사전에 예측하지 못했다. 신용평가사의 평가 능력을 의심하는 눈초리는 어제 오늘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기업 눈치를 보며 높은 신용등급을 부여하는 ‘뻥튀기 평가’를 시작으로 평가사별로 다를 바 없는 이른바 ‘붕어빵 평가’. 기업에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뒤늦게 등급을 조정하는 ‘뒷북 평가’에 이르기 까지 신평사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한지 오래다.

하지만 신평사들의 탓으로 돌리기엔 구조적인 병폐가 심각하다. 때문에 신용평가 시스템에 대한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신용평가 업무는 신평사의 내부 통제에만 의존하고 있어서 기업과 신평사간 ‘갑을관계’에서 비롯되는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할 법적 장치가 없는 상황이다. 평가 대상기업의 수수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신평사의 수익구조에 보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신평사가 부실한 평가를 반복하는 데에는 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수익구조가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수익의 대부분을 신용평가 대상인 기업에 의존해야하는 신평사들로서는 구조적으로 종속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김필규 자본시장연구위원은 “국제 신평사는 기업에 절대 ‘갑’이지만, 국내 신평사는 반대로 ‘을’의 구조”라며 “발행기업이 우위를 점하는 시장구조에 따라 국내 신평사들은 신용등급 강등에 상당히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현장에선 기업들의 신평사를 상대로 한 신용등급 상향 요구 강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 전에 미리 접촉해 더 좋은 등급을 제시한 신평사를 찾는 이른바 신용등급 쇼핑 사례는 양호한 축에 속한다. 일부 대기업 재무담당자들은 읍소로 시작해 접대와 로비를 시도하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계약을 끊겠다는 협박성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고 신평사업계는 귀뜸한다.

객관적인 평가보다 경쟁적으로 신용등급 올려주기 서비스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기업 신용등급이 붕어빵이니 거품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잘못된 신용등급의 피해는 결과적으로 채권이나 주식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부실을 방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금융시장 질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 실제로 삼환기업, 삼부토건, 동양건설산업, LIG건설, 진흥기업 등 모두가 법정관리 신청 후 투자적격등급에서 부적격으로 강등했다. 이들 신용평가사의 평가를 믿고 이들 기업이 발행한 CP(기업어음)나 회사채 등을 사들인 개인고객들은 수천억원대 손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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