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끝나지 않은 도전’펴내
그리고 벤처 생태계를 키워내며 최근에는 중소기업 발전과 차세대 영재 기업인 육성에 힘쓰며 모든 창업인들의‘멘토’로 불리는 이 교수의 지금은 누구도 걷지않던 가시밭길을 헤쳐온 것에 대한 값진 열매다.
1985년 늦은 봄, 당시 카이스트 전파공학과 수석연구원이던 33세 청년 이민화는 연구원들이 모인 자리에서‘창업을 하자’는 폭탄선언을 한다. 당시 그가 속한 연구실에서 진행 중이던‘초음파 진단기’프로젝트에 대한 기업 후원이 사라지면서 더이상의 연구 진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공부’만 알던 학생들에게‘사업’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당연히 주변의 반대도 거셌다. 하지만 청년 이민화는 한 마디로 그들의 우려를 일축했다.
“젊을 때 회사 말아먹는 것도 재밌지 않겠냐. 우리가 시작한 일, 우리가 키워보자.”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주변 시선 역시 냉담했다. 1980년대는 벤처기업에 대한 사회인식과 인프라가 전무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특히 한 의료기기 박람회에 출품했던 첫 초음파 진단기는 판매된 30개 제품 모두를 리콜(Recall)하는 실패를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이 교수는 당시를 회상하며“실패는 학습의 수단일 뿐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 만은 없다”고 말했다.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값진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그의 생각은 이후 창업한‘메디슨’의 기업문화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그리고 이러한 메디슨의 기업문화는 메디슨이 세계적인 의료기기 회사로 발돋움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회사를 이끌어가면서 이 교수는 열악한 국내 벤처기업 인프라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갖게 됐다.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위한 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꿈을 접는 이들을 돕고, 벤처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바로 잡을 필요성을 느꼈다. 이후 그는 제 2의, 제 3의 이민화가 나올 수 있도록 벤처기업 육성과 풍토 마련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은 IT버블 붕괴로 인한 메디슨 부도 이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2001년부터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강조하는 부분은 바로‘인재 양성’이다. 현재 카이트스 과학영재교육연구원과 기술경영대학원에서 차세대 영재기업인 양성을 위한 교육에 집중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특히 이 교수는‘새로운 세상을 이끌, 새로운 인재양성을 위한 새로운 교육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식 쏟아붓기에 국한된 현 교육체계에서 벗어나‘재미와 창조’가 교육의 기반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현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단순한 지식 주입”이라며“뻔한 답 보다는 창조적 대안을 도출하는 이른바‘스마트 캠퍼스’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오는 13일 출간하는 자서전‘끝나지 않은 도전’에도‘특허 영재기업인 프로젝트’를 추진 하는 이유가 실렸다. 그는 자서전을 통해“미래 인재 육성의 근본적 교육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며“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혁신국가로의 전환은 바로‘교육 혁신’에 달려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애창곡은 ‘선구자’다. 그의 인생을 돌이켜본다면 ‘선구자’라는 노래는 이 교수와 제법 잘어울린다. 그는 앞으로도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멘토로서 열정으로 뛰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길 소망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민화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