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국채 발행 법안 국회서 폐기…재정 바닥
일본이 미국보다 먼저 ‘재정절벽’에 직면했다.
일본 정부는 7일(현지시간) 재정 구멍을 메우기 위한 특별공채발행 법안, 이른바 적자국채 발행 법안이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남은 2012 회계연도 예산 집행을 부득이하게 억제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일본 정부가 예산 집행을 억제하기로 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지방교부세 일부와 국립대학 보조금 지급 등을 연기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5조엔의 재정 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초 10월말이면 재원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예산 집행 억제를 통해 그나마 1개월 정도의 시간을 번 셈이다.
아즈미 준 재무상은 이례적인 사태에 대해 “정치권의 대립으로 국민 생활에 영향을 끼치게 돼 정말 유감스럽다”며 “진전이 없으면 10월에 추가로 예산 집행을 억제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지난달 야권의 총리 문책 결의로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각종 법안 심의와 처리가 중단돼 노다 요시히코 총리의 국정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별공채발행법안은 국채를 발행해 2012 회계연도(2012년 4월∼2013년 3월) 예산의 일반회계 수입 중 40% 이상인 약 38조엔을 조달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이 8일까지인 정기국회 회기 내에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 폐기, 10월 하순부터 예산이 고갈돼 재정 운용이 막히게 돼 있었다.
이미 지난 4일 지방자치단체의 운영 경비로 쓰이는 지방교부세 교부금 4조1000억엔의 배정이 보류됐다.
정부는 자금난이 심각한 지자체에 대해서는 은행을 통해 임시변통하거나 허리띠를 더 졸라메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이상 남은 재정으로 떼우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각 부처가 이런 비상 시국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7일까지 각 부처에서 올라온 2013 회계연도 예산 총액은 사상 최대인 98조엔에 달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각 부처가 재정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방만하게 예산을 짰기 때문.
이대로라면 예산액은 4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돌파한다.
동일본 대지진 피해 복구 예산까지 포함하면 예산 총액은 100조엔도 넘는다.
예산 중 비중이 가장 큰 것은 30조엔이 넘는 사회보장비다. 전년도보다 8400억엔이 늘었다.
정부는 고령화로 늘어난 사회보장 관련 비용 증가분의 재원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실정이다.
국채비용도 문제다. 내년도 국채비용은 24조6000억엔으로 사회보장 관련 비용 다음으로 많다. 예상 금리를 2.2%로 다소 높게 책정했기 때문에 2012년도보다 2조7000억엔이 늘었다. 정부는 현 상황을 감안해 예산 편성 과정에서 깎을 방침이다.
일본 정부 당국자들은 향후 예산 편성에서 차기 정권의 기조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국정 방향과 성장 전략이 달라져 예산 비중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노다 총리는 소비세율 인상에 야권의 동의를 얻는 조건으로 머지않은 때에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일본은행은 정부의 교부세 지급 보류로 인한 금융시스템의 혼란을 막기 위해 일일 규모로는 최대인 1조9000억엔을 시중 은행에 풀 계획이다.
일본은행은 이같은 조치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