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만나자는 노환규 회장의 행동도 명분 없는 떼쓰기로 비쳐지지만 복지부의 애매한 태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임채민 장관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하지만 임 장관 발언 이후 이창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환규 회장이 진정성을 갖추기 전까지는 만나지 않겠다는 것이 복지부의 공식입장”이라며 임 장관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과장 말대로라면, 임 장관이 과연 노 회장을 만날 의지가 있는 지 헷갈린다. 의사협회의 주장대로 아닌 척 하지만 속으로는 의료계의 동의 없이, 또는 무시하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슈퍼 ‘갑’의 위치로 생각하고 있진 않은지 말이다.
노환규 호 출범 이후 의료분쟁조정제도 불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탈퇴, 의사면허신고제 거부 등 보건정책을 놓고 의협과 복지부는 대립각을 세워왔고, ‘포괄수가제’를 계기로 갈등의 골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노 회장이 강경노선을 취하고 복지부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더라도 이번 사태를 대처해나가는 복지부의 역량과 방법에도 문제가 있다.
실물 경제를 오래 다뤄온 정통 관료 출신인 임 장관은 환자와 일선에서 직접 접촉하는 의사들보다 의료 현장을 잘 알 순 없을 것이다. 소통과 신뢰 없이 현장과 동떨어진 정책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000년 당시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강행했던 ‘의약분업’이 12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 실패했고 국민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혹평을 얻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의료계와 정부가 볼썽사나운 그림만 연출하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복지부 장관의 입을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